그레고리오 (Gregory) 라는 세례명은 총 28분이나 계시는데 각각 어떤 분이신지와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레고리오 (Gregory)
24. 7월 20일 복자 그레고리오 로페즈(Greogory Lopez)
신분 : 은수자
활동연도 : +1596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에스파냐의 마드리드 출신인 그레고리우스 로페즈는 궁중의 사환으로 일하던 중에 에스트레마두라에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 경당을 순례하였는데 이때 멕시코에 과달루페의 다른 경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기 위하여 그곳으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베라크루스에서 소유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에 은수자로 살만한 곳을 찾다가, 어느 한적한 계곡에서 기도와 고행으로 평화스럽게 얼마를 살았고 그 후 도미니코회의 유명한 선교사의 권유를 받고 멕시코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기 위하여 길을 떠났으나, 몇몇 공동체에서 생활한 결과 자신은 공동생활보다 은수자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때부터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고, 멕시코의 대주교조차 그를 일컬어 특별한 신심과 덕행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여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특히 그의 철저한 가난 생활은 지나칠 정도였으며 늘 성서 공부를 하여 성서에 뛰어난 지식을 가졌습니다.
멕시코 전역에서 그를 공경하였으며 54세를 일기로 운명하였습니다.
25. 3월 16일 성인 그레고리오 마카르(Greogory Makar)
신분 : 주교
활동연도 : +101년경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아르메니아에서 출생한 성 그레고리우스 마카르는 리틀 아르메니아의 니크로폴리스 교외의 한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사제로 서품 되었습니다.
설교가로서 크게 성공하였고, 그의 선임 주교가 서거할 때 주교로 승품 되었는데 독수 생활을 늘 갈망하던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순회 설교하던 중에 피티비엘에 자리를 잡고 은수자가 되었습니다.
영적 지혜가 특히 뛰어났고, 대중들을 사로잡는 능력이 비상하였으며 치유의 은사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26. 6월 18일 성인 그레고리오 바르바리고(Grogory Barbarigo)
신분 : 추기경
활동지역 : 파도바(Padova)
활동연도 : 1625년-1697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그가 태어난 당시 유럽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들 간의 맹렬한 전쟁이 7년간 지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이 30년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1625년 이탈리아의 베네치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 바르바리고는 베네치아에서 교육을 받았고 20대 초반에 베네치아 정부의 대사인 루이지 콘타리니가 독일의 뮌스터로 파견되는 데 동행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이루어졌는데 그 회의에서 교황 대리인 파비오 치기는 성 그레고리우스를 발견하고 젊은이였던 그와 예외적으로 친구가 됩니다.
그는 1655년 사제 서품을 받고, 1657년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대담하게 활동하였습니다.
파비오 치기가 교황 알렉산데르 7세로 선출되었을 때 차비오 치기는 뮌스터에서 만났던 베네치아 출신의 성 그레고리우스에 대한 인상을 잊을 수 없었는데 그래서 그는 성 그레고리우스를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주교로 임명합니다.
3년 후인 1660년 추기경으로 승품된 성 그레고리우스는 1664년 파도바의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33년간 봉직하였습니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탁월한 교회의 사람이었고 정치가였는데 종교개혁 시기에 그리스도교의 재일치를 위해 노력했고, 사제 양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여 신학생들을 위한 좋은 대학과 신학원을 세웠고, 자체 출판사를 설립했으며, 교부들의 작품에 대한 지식이 있는 이들과 성서를 아는 인물들을 교사로 임명하였습니다. 그 출판사에서 출판한 몇몇 작품은 이슬람 국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성 그레고리우스의 사목적 헌신은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11월 4일)의 헌신에 견줄만하였는데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도 타인에게는 친절하여 곤경에 처한 이들을 큰 열정으로 도왔고 추기경으로서 다섯 번의 교황 선거에 참여하였으며 유력한 교황 후보로 손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선종하여 파도바의 대성전에 묻혔으며 1761년 복자품에 올랐고, 1960년 교황 요한 23세(6월 3일)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27. 5월 4일 복자 그레고리오 첼리(Gregory Celli)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베루치오(Verucchio)
활동연도 : +1343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이탈리아 리미니교구의 베루치오에서 태어난 그레고리우스 첼리는 15세 때에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녀 모니카에게 심취하여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에 입회하였는데 10여 년 동안 수도원에 살면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며 이단으로 기울어지던 많은 이들을 개종시켜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 수도원을 세운 그레고리우스의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 형제들이 그의 엄격한 생활과 명성을 시기하여 집안의 토지에 지은 수도원에서 그를 쫓아내는데 다행히 리에티 교외의 몬테 카르네리오에 있는 작은 형제회에 들어가서 118세의 일기로 선종할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비가 오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입니다.
28. 11월 14일 성인 그레고리오 팔라마스(Gregory Palamas)
신분 : 주교, 신비가, 신학자
활동지역 : 테살로니카(Thessalonica)
활동연도 : 1296-1359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빨라마스
성 그레고리우스 팔라마스는 금욕과 신비 신학의 뛰어난 이론가로서 14세기의 그리스 정교회에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1296년 11월 11일 또는 14일 콘스탄티노플에서 황실과 관계된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나 왕립 대학교에서 고전 철학을 배운 그는 1316년에 그는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정계를 포기하고, 두 동생과 함께 그리스 정교회의 영적 중심지인 아토스산의 수도원에 입회하여 존경받는 수도자이자 스승으로서 성서와 교부들의 저서들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다가 한 영적 스승에게서 관상 방법을 배웁니다.
1325년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아토스 산에서 나와 테살로니카와 마케도니아로 피신한 그는 같은 해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이후 10명의 동료들과 함께 마케도니아에서 은수생활을 하였습니다.
1331년 아토스 산의 성 사바스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는 1335년경 인접한 한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으나 그의 엄격한 수도생활 지침 때문에 수사들의 반발을 사서 다시 성 사바스 수도원으로 돌아왔으며 1347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끝날 무렵 교회의 전통을 유지, 보존하려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테살로니카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는 주교직을 수행하면서 인문주의 비판자들에게 맞서는 저술을 계속하며 여생을 보냈으며 1354년 투르크인들에 의해 투옥되었지만, 석방금을 내고 테살로니카로 돌아온 후 1359년 11월 14일 세상을 떠납니다.
사망한 지 9년 뒤인 1368년 콘스탄티노플 시노드에서 성인으로 추대되었으며, '정교회의 아버지요 박사'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레고리오(Gregory) 축일 1 (1-4) _ 1월 1일, 1월 2일, 1월 4일, 2월 27일
그레고리오(Gregory) 축일2 (5-10) _ 3월 9일, 4월 24일, 4월 26일, 5월 9일, 6월 18일, 8월 25일
그레고리오(Gregory) 축일3 (11-16) _ 9월 30일, 11월 17일, 11월 20일, 11월 23일, 11월 27일
그레고리오(Gregory) 축일4 (17-23) _ 12월 19일, 12월 24일, 1월 10일, 9월 3일, 2월 11일, 12월 10일,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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