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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유스토(Justus) 축일 2.(8-9) - 9월 2일, 10월 18일

 

유스토(Justus)

같은이름 : 유스또, 유스뚜스, 유스투스

 

8. 9월 2일 성인 유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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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스토(9월 2일)

 

신분 : 주교, 은수자

활동지역 : 리옹(Lyon)

활동연도 : +381년 이후

 

프랑스 론강(Rhone R.) 유역 투르농(Tournon)에서 4세기 초반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성 유스토는 비엔(Vienne)의 주교에게 가르침을 받고 부제가 되었고 리옹 시민들에 의해 350년 이후 어느 날 그 도시의 주교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발랑스(Valence) 시노드에 374년 참석하여 갈리아 지역 성직자와 신자들의 종교 규율에 관하여 논의하였고 381년에 이탈리아 북부 아퀼레이아(Aquileia)에서 열린 시노드에 참석한 그는 밀라노(Milano)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를 도와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들과 쟁론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그는 성 암브로시우스와 서신을 주고받았고 성경에 관한 논의를 담은 성 암브로시우스의 편지 두 통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그가 상당한 학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존경받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아퀼레이아 시노드가 끝난 얼마 후에 리옹 거리에서 정신 장애를 지닌 어떤 사람이 칼을 난폭하게 휘둘러 여러 사람을 해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죄인들의 성역으로 인정된 대성당으로 피신한 그는 성당에 불을 지르겠다는 분노한 군중들의 위협 속에서도 성 유스투스는 그 사람을 정식 법정에 세우겠다는 약속을 받고 치안 판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성당 밖으로 그 사람이 나오자마자 성난 군중은 경비병을 제압하고 그를 붙잡아 무참히 죽여버리고 성 유스투스는 비록 죄인이기는 하지만 성당으로 피신을 온 사람을 주교로서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였고 자신이 더는 교구를 이끌어갈 자격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는 주교직을 사임한 후 참회의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비밀리에 이집트의 사막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주교좌성당의 독서자였던 성 비아토르(Viator, 10월 21일)가 이때 그를 따라 동행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스케티스(Scetis)의 어느 수도원으로 들어가 평범한 수도자로서 수년 동안 은수 생활에 전념하였습니다.

 

 

우연히 리옹 사람들이 성 유스투스의 은신처를 발견하고 그를 알아본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그들의 주교를 모셔오고자 사람들을 보냈지만 그들은 한사코 돌아가기를 거부하여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성 유스투토 주교가 선종한 뒤에야 성 비아토르의 유해와 함께 그의 유해를 리옹으로 이장해 모실 수 있었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비아토르와 함께 이집트 사막에 은거하며 천사와 같은 삶을 살았던 성 유스토가 10월 14일에 선종하여 주님께 돌아갔으며 스와 성 비아토르의 유해가 리옹으로 9월 2일 옮겨졌다고 9월 2일 목록에서 기록하였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역시 주교직을 떠난 성 유스토가 수년간 이집트에 은거해 수도자들과 함께 겸손한 삶을 살았으며 선종한 후에는 성 비아토르의 유해와 함께 리옹으로 옮겨졌다고 9월 2일 목록에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리옹 교구에서는 그에 관한 기념일을 예전에는 1년에 네 번 지냈는데, 7월 14일은 서품 기념일, 8월 4일은 그의 유해를 리옹으로 이장한 것을 기념하는 로, 9월 2일은 선종한 날, 10월 14일은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간 날로 기념하였습니다.

 

9. 10월 18일 성인 유스토

신분 : 소년, 순교자

활동지역 : 보베(Beauvais)

활동연도 : +287년

 

전해져 오는 전설에 의하면 성 유스토는 9살의 소년으로 로마 군인들에게 2명의 그리스도인을 비밀 장소에 숨겨준 죄목으로 죽임을 당한 인물입니다. 이는 프랑스의 보베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에 일어난 일로 성 유스토는 군인들에 의해 참수형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선포하였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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