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유스토(Justus) 축일 3.(10-12) - 11월 2일, 11월 10일

 

유스토(Justus)

같은이름 : 유스또, 유스뚜스, 유스투스

 

 

10. 11월 2일 성인 유스토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트리에스테(Trieste)

활동연도 : +4세기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막시미아누스 황제 때 살았던 성 유스토는 이탈리아 동북부 트리에스테의 시민으로 참회 생활과 자선 실천으로 유명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성모독으로 일부 시민에 의해 고발되어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 제사 바치기를 재판관 앞에서 단호하게 거부하여 익사형을 선고받았고 트리에스테 앞바다에 무거운 돌을 몸에 매달고 던져져 순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라는 이름의 한 사제의 꿈에 나타난 그는 자신의 시신이 떠오를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세바스티아누스는 잠에서 갠 후 몇몇 신자들과 함께 바닷가로 나가 그의 시신을 리바 그루물라(Riva Grumula)에서 발견하여 인근에 안장하였습니다.

 

그의 무덤 위에 나중에 작은 성당이 건립되었고, 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14세기에 건립된 트리에스테 주교좌성당에 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그는 트리에스테 도시와 교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으며 대성당 안에 현존하는 12세기의 모자이크를 통해서도 그를 공경하는 오랜 관습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순교한 날이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과 겹치는 관계로 트리에스테 교구에서는 그다음 날로 옮겨 축일을 기념하고 있지만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2일인 그가 순교한 날로 알려진 날에 그의 순교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1. 11월 10일 성인 유스토

11월10일이-축일인-성-유스토
성 유스토(11월 10일)

 

신분 : 대주교

활동지역 : 캔터베리(Canterbury)

활동연도 : +627년경

 

성 유스토는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가 로마의 수도자들을 영국 선교를 위해 파견할 때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5월 27일)에 이어 두 번째로 601년에 파견한 베네딕토회 수도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영국에 597년에 도착해 선교활동을 시작하였고 교황에게 더 많은 선교사를 요청하였는데 그 요청에 따라 2차 선교단이 성 멜리투스(Mellitus, 4월 24일) 수도원장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그들은 선교에 필요한 많은 전례 용품과 서적 등을 가지고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대주교로 승품하면서 영국 내에 12개의 교구를 지닌 두 개의 관구를 설정하도록 했다. 교황의 뜻에 따라 캔터베리에 대주교좌를 세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곳의 초대 대주교에 올랐고 604년에는 켄트(Kent) 왕국의 로체스터(Rochester)에 새로운 교구를 설립하고 그곳의 초대 주교로 성 유스토를 임명하였습니다.

 

 

성 유스토는 로체스터의 첫 주교로서 선교활동을 펼치던 중 616년에 앵글로색슨족(Anglo-Saxons)의 왕 중에서 최초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적극적으로 복음화를 후원해 주던 켄트 왕국의 성 에텔베르트(Ethelbert, 2월 24일)가 선종하면서 위기를 맞이합니다. 아버지에 이어 왕위를 계승한 에드발드(Eadbald)는 앵글로색슨족의 이교를 선호하였고 이에 그리스도교를 포기하면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고 잠시 갈리아 지방으로 피신을 갔던 성 유스토는 1년 뒤에 로체스터로 돌아올 수 있었고, 조심스럽게 사목활동을 펼치다가 교황 보니파티우스 5세(Bonifatius V)에게 624년 팔리움(pallium)을 받고 성 멜리투스를 계승하여 캔터베리 교구의 제4대 대주교가 되었으며 자신이 사목하던 로체스터 교구의 후임 주교로는 로마누스(Romanus)를 임명하고 축성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성 바울리누스(Paulinus, 10월 10일)를 625년에 요크(York)의 초대 주교로 축성하면서 노섬브리아(Northumbria) 왕국의 복음화에 힘쓰도록 하였습니다. 성 바울리누스는 노섬브리아의 왕인 성 에드윈(Edwin, 10월 12일)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그 외에도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치다가 성 에드윈이 633년 전투 중에 사망한 후 그 후계자들이 그리스도교를 거부하자 일단 켄트 왕국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요크로 돌아가지 못했고, 이탈리아 앞바다에서 성 유스토 대주교를 대리하여 로마를 방문하던 로마누스 주교가 익사하면서 공석이 된 로체스터의 주교직을 맡게 됩니다. 성 유스토는 627년경 선종하였고 11세기말에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으로 그의 유해가 이장되었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유스토가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영국 복음화를 돕기 위해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파견되어 결국은 캔터베리의 주교가 되었다고 그가 순교한 날로 알려진 11월 10일 목록에서 기록하였습니다.

 

12. 12월 14일 성인 유스토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83년

 

성 유스토와 성 아분디우스(Abundius)는 에스파냐에서 순교하였는데 원래 화형을 당했지만 그들에게 불길이 번지지 않자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