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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니콜라오(Nicholas) 축일 1. (1-6) - 5월 15일, 6월 2일, 7월 24일, 9월 10일, 10월 1일, 10월 10일

 

니콜라오(Nicholas)

 

1. 5월 15일 성인 니콜라오

신분 : 주교, 증거자

활동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 +925년

같은이름 : 니고나오, 니콜라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우스

 

성 니콜라우스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였는데 레오 6세 황제가 동방교회에서 법으로 금하고 있는 네 번째 혼인을 하려고 하자 이를 끝까지 허락하지 않아 황제에 의해 해임된 후 추방되었습니다.

 

2. 6월 2일 성인 니콜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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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콜라오(6월 2일)

 

신분 : 순례자

활동연도 : +1094년

같은이름 : 니고나오, 니콜라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우스, 페레그리노, 펠레그리노, 페레그리누스, 펠레그리누스

 

성 니콜라오 페레그리누스의 생애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열심하고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 사람이었으며 이방인처럼 이탈리아에서 방랑생활을 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이탈리아 남동부 오트란토(Otranto)에 얼마 동안은 정착했지만, 곧 아폴리아 전역을 방랑하였고 병이 들어 트라니(Trani)에서 선종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키리에 엘레이손’(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을 외치며 다녔던 그는 가끔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물건이나 사과 등을 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이 모이면 아이들과 함께 찬미가를 노래하였습니다. 가끔 그는 미친 사람으로 몰려 곤욕을 치루기도 하였지만 그의 죽음을 계기로 높은 그의 덕이 세상에 알려졌고 그의 무덤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해 순례자들이 지금도 자주 찾는 곳입니다. 그는 성 니콜라오 펠레그리노 또는 성 니콜라우스 순례자라고 불리고 있으며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에 의해 1098년 시성되었습니다.

 

3. 7월 2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링쾌핑(Linkoping)

활동연도 : 1331-1391년

같은이름 : 니고나오, 니콜라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우스

 

파리(Paris)와 오를레앙(Orleans)에서 대학을 마친 후 사제가 된 성 니콜라오 헤르만손(Nicolaus Hermansson)는 궁중의 젊은 왕자를 가르치는 교사로 첫 부임을 하게 됩니다. 그는 그 후 링쾌핑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그 즉시 개혁을 주도하면서 엄격한 자신의 생활을 보여주었으며 스웨덴에서는 비록 어려웠으나 거의 강제적으로 그는 사제의 독신제를 강요하였습니다. 시를 쓰기도 하고 아름다운 찬미가를 만들거나 작곡하기도 하였는데 중세 교회에서 전례에 사용하며 대중적으로 이용된 곡들도 많습니다. 그는 성녀 브리지다의 서거 당시 “로사 로란스 보니타템”이란 유명한 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4. 9월 10일 성인 니콜라오

신분 : 사제, 은수자, 증거자

활동지역 : 톨렌티노(Tolentino)

활동연도 : 1245-1305년

같은이름 : 니고나오, 니콜라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우스

 

성 니콜라오의 부모는 신심 깊은 신앙인이었지만 오랫동안 자녀가 없었는데 이탈리아 남부 바리(Bari)에 있는 성인의 무덤을 순례하면서 성 니콜라우스에게 전구를 청한 후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래서 그 이름을 니콜라우스라고 정합니다. 이탈리아 안코나(Ancona) 지방의 산탈젤로(Sant'Angelo)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독서와 공부를 즐기며 성소의 꿈을 키웠던 성 니콜라오는 어느 날 “이 세상은 지나가는 곳입니다.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느님만이 참 행복을 주십니다.”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신부님의 설교를 듣고 크게 감하여 수도자가 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열여덟 살 무렵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회하여 1271년 사제품을 받았고 수도회의 엄격한 규율을 충실히 지키며 살았습니다. 사제품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꿈을 꾸게 되는데 꿈에서 세상을 떠난 수도회의 한 신부님이 나타나 자신과 다르 영혼들이 연옥에서 고통받으니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고 수도원장과 다음날 꿈 이야기를 나눈 후 미사를 연옥 영혼들을 위해 봉헌할 허락을 받습니다. 그는 그 후로도 늘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와 기도를 잊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위령 성월이 되면 이탈리아 신자들은 그에게 연옥 영혼을 위해 전구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톨렌티노 지역으로 1975년 파견된 그는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당시 정치적 분쟁이 심해 톨렌티노 지역은 많은 주민들이 신앙생활보다 당파싸움에 더 열을 올리던 시기였는데 그는 텅 빈 성당에서 기다리지 않고 거리로 나가 설교를 하면서 정열적인 사목활동을 펼쳤습니다. 성 니콜라오는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는 빈민촌, 교도소, 병원, 보육원 등을 찾아다니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베풀었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병이 낫는 기적도 일어나 그를 통해 많은 이들이 냉담을 풀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성 니콜라오는 말년에 병으로 고생하다가 톨렌티노에서 1305년 9월 10일 선종하면서 "나는 양심에 조금도 거리끼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라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말씀을 형제들에게 남겼습니다. 그는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IV)에 의해 1446년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5. 10월 1일 복자 니콜라오

신분 : 설립자

활동지역 : 포르카 팔레나(Forca Palena)

활동연도 : +1449년

같은이름 : 니고나오, 니콜라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우스

 

니콜라오는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Abruzzo)에서 교구사제로 봉사하다가 로마(Roma)를 여행하는데 이때 수도생활에 대한 강한 성소를 느끼게 되고 성 히에로니무스회에 관련되는 회칙으로 은수자회를 설립합니다. 그에게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IV)가 피렌체(Firenze)에 있던 폐허화된 어느 수도원을 하사하였고 그 후 그는 로마로 돌아와 또 다른 공동체를 야니쿨룸에 세웠습니다. 그의 행업에서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함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6. 10월 10일 성인 니콜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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