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Rebecca)
3월 23일 성녀 레베카
신분 : 수녀
활동지역 : 레바논(Lebanon)
활동연도 : 1832-1914년
같은이름 : 라프카, 베드로닐라, 부트로시야, 삐에뜨라, 삐에리나, 아라예스, 초보크, 페트로닐라, 피에리나, 피에트라
종종 가톨릭 교회 안에 로마 예식 이외에 다른 전례 예식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곤 합니다. 동방전례의 가톨릭 교회인 마론(Maron) 전례에서 보편 교회에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었던 성녀 레베카는 구약성경 아가에 나오는 신부처럼 레베카 역시 신랑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나의 신부여, 레바논에서 이리로 오너라. 레바논에서 이리로 오너라, 어서 오너라. 아마나 산 꼭대기에서, 스닐 산 꼭대기, 헤르몬 산 꼭대기에서 내려오너라. 사자굴에서, 표범 우글거리는 산에서 내려오너라”(4,8). “옷에서 풍기는 향내는 정녕 레바논의 향기로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울타리 두른 동산이요, 봉해 둔 샘이로다”(4,11-12). “그대는 동산의 샘 생수가 솟는 우물, 레바논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어라”(4,15).
1832년 6월 29일 레바논의 힘라야(Himlaya)에서 태어난 성녀 레베카는 7월 7일 부트로시야(Boutroussieh)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부트로시야는 피에리나(Pierina), 피에트라(Pietra), 페트로닐라(Petronilla)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외동딸인 그녀에게 그녀의 아버지 무라드 사베르 샤박 알 라예스(Mourad Saber Shabaq al Rayes)와 어머니 라프카 게마옐(Rafqa Gemayel)은 하느님의 사랑과 매일의 기도생활을 가르쳤습니다. 19세기 레바논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으며 레베카의 삶은 특히 6살에 어머니가 죽은 후 더욱 어려웠습니다. 시리아에서 4년 동안 가정부로 일했고 그녀는 몇 년 후인 1853년 빅파야(Bikfaya)에 있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회의 구원의 모두 수녀원에 지원자로 입회하였습니다.
1855년 성 마론 축일에 수련기를 시작한 그녀는 아니사(Anissa, 아녜스)라는 수도명을 받았고 5년 후 그녀는 데일 엘 카마르(Deir-el-Qamar)에서 그리스도인의 대학살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속해 있던 수녀원이 1871년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회를 만들기 위해 예수 성심회와 하나로 합치게 되었는데 이때 새로운 회에 들어가거나 현존하는 수녀회에 남아 있거나, 수도 서면을 관면받을 수 있는 선택권이 모든 수녀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성녀 레베카는 일생을 통해 음성과 꿈과 환시를 통해 예외적인 계시를 받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아녜스(Agnes) 수녀는 1871년 자신의 미래와 성소에 대해 기도하기 위하여 바트룬(Batroun)에 있는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성당에 갔는데 그날 밤 은수자 성 안토니우스(Antonius)가 꿈에 나타나 마론 전례의 발라디야회(Baladiya Order)에 들어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성녀 레베카는 1871년 39세의 나이로 엘 카른(El-Qarn)에 있는 금욕주의 발라디야회의 성 시몬 봉쇄 수녀원에 입회함으로써 자신이 꾼 꿈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녀는 여기서 힘라야의 부트로시야로 알려졌습니다. 1873년 8월 25일 종신서원을 한 그녀는 수녀원장인 에프렘 게아게아 알 브쉐라위(Ephrem Geagea al-Bsherrawi)에게 베일과 라프카(Rafqa, 레베카)라는 이름을 다시 받게 됩니다.
성녀 레베카는 금욕 수녀회의 회원으로서 1885년 주님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기를 청하였는데 그녀의 건강은 그날 밤부터 그녀의 급격히 악화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멀었으며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음식 찌꺼기만을 먹는 등의 고행을 계속하였고 공동체의 기도를 함께 하였으며 양털실을 짜고 양말을 뜨개질하는 일 등을 하였습니다. 1907년 그녀는 지속적인 고통으로 인해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모든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에 합치시킴으로써 불평 없이 기쁨으로 참아내었습니다.
성녀 레베카는 그랍타(Grabta)의 성 요셉(Josephus) 수도원에서 죽음을 준비하였고 선종 3일 전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나를 삶에로 이끄실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1914년 3월 23일 마지막 임종 예식을 마치고 비로소 모든 고통을 뒤로하고 그녀는 하느님 안에서 평화로운 안식을 찾았습니다. 성녀 레베카가 사망하고 4일이 지났을 때 레베카의 중재기도를 통해 이루어진 여러 기적 중의 첫 번째 기적을 그녀의 장상인 두미트(Doumit) 수녀가 경험하였으며 이외에도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1985년 11월 17일 성녀 레베카는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2001년 6월 10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습니다. 그녀는 라프카 피에트라 초보크 라예스(Rafqa Pietra Choboq Ar-Rayes)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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