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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플로렌시오(Florentius) 축일 2.(9-13) - 10월 10일, 10월 13일, 10월 17일, 10월 27일, 11월 7일

 

플로렌시오(Florentius) 

같은이름 : 플로렌시우스, 플로렌씨오, 플로렌씨우스, 플로렌티오, 플로렌티우스

 

플로렌시오 세례명은 9월 22일이 축일인 성인의 세례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듯 하지만 다른 축일의 성인을 선택해도 상관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남자가 사용하기에 멋있는 세례명이라고 생각하는 세례명 중 하나입니다.

 

9. 10월 10일 성인 플로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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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플로렌시오(10월 10일)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지역 : 본(Bonn)

활동연도 : +3세기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독일의 쾰른(Koln) 동남쪽에 있는 본에서 성 플로렌시오와 성 카시우스(Cassius)와 많은 동료가 순교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막시미아누스 황제 때 상부 이집트(Upper Egypt)의 룩소르(Luxor) 인근 테베(Thebes)에서 갈리아 지방에서 일어난 바가우데(Bagaudae)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모집된 군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테반 군단(Theban Legion)의 일원으로서 알프스를 넘어 아가우눔(Agaunum, 오늘날 스위스의 생 모리스 Saint-Maurice 또는 장크트 모리츠 Sankt Moritz)에 성 마우리티우스(Mauritius, 9월 22일)의 지휘 아래 도착했으며 그곳에서 로마 신들에게 희생제물 바치라는 황제의 명을 거부하여 학살당한 테반 군단의 일부가 아가우눔을 탈출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독일의 쾰른(Koln)과 크산텐(Xanten)과 본에서, 또 일부는 스위스의 졸로투른(Solothurn)에서 체포되어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동료와 함께 순교했다고 합니다.

 

4세기말에 성 플로렌시오와 성 카시우스와 동료들의 무덤 위에 성당에 세워졌고, 이 성당을 중심으로 수도원과 중세도시가 형성되었으며 11세기에는 기존의 성당을 헐면서 세 개의 석관이 발굴되었는데 그 안에서 발견된 두 성인과 다른 순교자의 유해는 새로 건립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주교좌성당 지하에 모셨습니다. 본의 주교좌성당은 성 플로렌시오와 성 카시우스의 이름으로 봉헌되었으며 16세기 후반 전쟁 중에 성당의 많은 보물과 유해가 약탈당했지만 성인들의 유해는 다행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두 성인은 1643년에 본이란 도시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그 뒤로 나폴레옹의 점령 이후 제단이 해체되면서 사라진 유해가 19세기말 성당을 복원하던 중 성가대석 천장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1971년 성인들의 유해를 모신 지하 묘지 경당이 본 주교좌성당 안에 새로 건립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미술에서 보통 테반 군단의 일원인 군인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10. 10월 13일 성인 플로렌시오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테살로니카(Thessalonica)

활동연도 : +312년

 

성 플로렌시오는 막시미누스 다자(Maximinus Daza) 황제 치하의 테살로니카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습니다.

 

11. 10월 17일 성인 플로렌시오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오랑주(Orange)

활동연도 : +526년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 오랑주의 제8대 주교였던 성 플로렌시오는 당대의 이단들에 맞서 그의 교구를 지킨 목자였으며 수도원 학문의 후원자로, 그리고 개인적인 성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2. 10월 27일 성인 플로렌시오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부르고뉴(Bourgogne)

활동연도 : +3세기

 

성 플로렌시오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방의 트루아 샤토(Trois-Chateaux)에서 순교하였습니다.

 

13. 11월 7일 성인 플로렌시오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활동연도 : +693년

 

아일랜드 사람인 성 플로렌시오는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의 사도로 공경을 받고 있는데 그는 일찍이 린겔베르크(Ringelberg) 계곡으로 들어와서 은수자로 정착하였으며 그때부터 인근 부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농아였던 성 다고베르트 2세(Dagobert II) 왕의 딸을 기적적으로 치유함으로써 그의 선교 활동은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국왕은 알자스의 하셀락(Haselac) 교외에 수도원을 지어 주었고 678년경에 그는 스트라스부르의 주교로 승품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기 때문에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매우 효과적으로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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