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로사(Dafrosa), 비비아나(Bibiana)
1월 4일 성녀 다프로사와 12월 2일 성녀 비비아나는 모녀 지간으로 같은 소개글로 보실 수 있습니다.
1월 4일 성녀 다프로사(Dafrosa)
신분 : 부인, 순교자
활동연도 : +4세기경
같은이름 : 다쁘로사, 다프로싸
12월 2일 성녀 비비아나(Bibian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 +4세기경
같은이름 : 비비안, 비비안나
성녀 비비아나(Bibiana, 12월 2일)는 로마의 동정 순교자로 그녀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교황 연대표”(Liber Pontificalis) 안의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468-483년) 교황의 생애 중에 등장하는데 그 내용 중 로마의 팔라티움 리키니아눔(Palatium Licinianum) 근처에서 성 심플리키우스 교황이 거룩한 순교자 비비아나의 유해를 모신 성당을 축성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성녀 비비아나와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다프로사에 대한 공경이 5세기부터 널리 퍼졌지만, 그들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의 전 총독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12월 22일)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고 아쿠아스 타우리나스(Aquas Taurinas, 아마도 오늘날의 몬테피아스코네 Montefiascone)로 추방당하였는데 성녀 비비아나는 그의 딸이자 성녀 데메트리아(Demetria, 6월 21일)의 언니입니다. 박해받는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피신처를 마련해 도와줄 정도로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던 성 플라비아누스는 군대가 들이닥친 순간에도 교우들과 함께 성녀 아녜스(Agnes)의 순교록을 읽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주님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순교의 길로 들어섰는데 그가 순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에 있던 성녀 다프로사와 두 딸 역시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으며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으며 이에 분노한 재판관은 성녀 다프로사를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성녀 비비아나와 성녀 데메트리아는 졸지에 부모를 잃고 모든 재산마저 빼앗겼으며 로마의 집정관으로부터 갖은 유혹과 회유, 배교를 강요당하였고 잔인한 고문의 위협까지 받았는데 어리고 연약했던 성녀 데메트리아는 그 충격과 고통으로 병약한 상태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재판관은 성녀 비비아나를 굴복시키고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게 하기 위해서 속임수를 써서 그녀를 어느 창녀의 집으로 보냈지만 믿음의 힘으로 정결을 지켰고 다시 집정관은 그녀를 간질환자들과 미친 사람들이 갇혀 있는 방에 집어넣었지만, 그들도 그녀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하였으며 그들의 병이 오히려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집정관은 결국 성녀 비비아나를 기둥에 묶어놓은 채 죽을 때까지 채찍질하라고 명령하였고 매를 맞아 죽어가던 그녀에게 날카로운 칼로 한 사형 집행인이 가슴을 찔러 결국 목숨을 빼앗았으며 시신을 야생 짐승들에게 던져주었으나 그녀의 시신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한 사제가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어머니와 동생이 묻힌 곳에 안장하였습니다.
363년경 그들의 무덤 위에 로마의 신자들이 경당을 세워 순교자들을 공경하며 전구를 청하였으며 그곳에 동정 순교자 성녀 비비아나에게 봉헌한 성당이 5세기 성 심플리키우스 교황 때 건립되어 현존하고 있으며 그 성당 안에는 성녀 비비아나가 죽기 전까지 묶여 채찍질을 당한 기둥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성녀 비비아나(Viviana 또는 Vivian으로도 표기)는 비비안나(Bibianna, Vivianna)로도 불리고 있으며 박해 때 겪은 일로 인해서 간질병 환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또 성녀의 무덤 주변에서 자란 허브의 효능에서 기인해 알코올 중독자, 두통 환자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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