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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펠릭스(Felix) 축일 1.(1-10) - 1월 1일, 1월 7일, 1월 9일, 1월 14일, 2월 3일, 2월 11일, 2월 21일, 2월 23일

 

펠릭스(Felix)

같은이름 : 펠리체

 

1. 1월 1일 성인 펠릭스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부르주(Bourges)

활동연도 : +580년경

 

파리(Paris)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5월 28일)가 그의 주교직을 승인하고 축성한 인물인 성 펠릭스는 존재 여부는 확실하지만 자세한 이력은 알 수 없습니다. 기록상으로는 그가 573년 파리 회의에 참석하였고 그에게 성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Venantius Fortunatus, 12월 14일)가 헌시를 바친 것이 남아 있습니다. 성 아우스트레시실루스(Austregisilus) 성당에 그의 무덤이 있습니다.

 

2. 1월 7일 성인 펠릭스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연대미상

 

헤라클레아(Heraclea)에서 성 펠릭스와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는 고통을 당하고 순교하였습니다.

 

3. 1월 9일 성인 펠릭스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아프리카(Africa)

활동연도 : +250년?

 

옛 “로마 순교록”은 성 펠릭스와 성 비탈리스(Vitalis), 성 세쿤도(Secundus), 성 에픽테토(Epictetus), 성 유쿤도(Jucundus)와 다른 7명의 동료가 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고 1월 9일 목록에서 전해주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북아프리카에서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의 박해 때 순교한 열두 명의 아프리카 출신 순교자들로 보이며 카르타고(Carthago)의 성 치프리아노(Cyprianus, 9월 16일)는 성 에픽테토를 주교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들의 이름을 1월 9일이나 다른 날 목록에서도 더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4. 1월 14일 성인 펠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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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1월 14일)

 

신분 : 신부, 증거자

활동지역 : 놀라(Nola)

활동연도 : +3/4세기

 

시리아 출신 로마 군인이던 헤르미아스(Hermias)의 아들로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Napoli) 교외의 놀라에서 태어난 성 펠릭스는 부친이 사망한 후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의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놀라의 주교인 성 막시모(Maximus, 2월 7일)에게 사제품을 받고 그의 보좌로 활동하였습니다. 250년에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의 박해가 일어났을 때 성 막시모 주교는 다행히 사막으로 피신했지만 성 펠릭스는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가서 주교를 도와주라고 하였고 그러자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사슬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려 그는 주교에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성 막시모 주교를 찾아갔을 때 추위와 배고픔으로 인해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던 주교에게 기적적으로 제철도 아닌데 성 펠릭스는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그 즙으로 성 막시모를 소생시켰고 곧 그를 도시로 모셔와 돌보도록 했습니다. 박해자들은 그 뒤로도 성 펠릭스를 다시 잡으려고 했으나 그의 은신처에는 거미가 집을 지을 정도로 아무도 오래전부터 출입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고 이 때문에 그는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6개월 동안 성 펠릭스는 마른 우물 속에 숨어 지냈고 이듬해에 박해가 끝나자 그는 다시 사제의 직무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성 막시모 주교가 선종하자 신자들은 성 펠릭스가 주교가 되기를 원했지만 자신의 선배 사제를 주교품에 올리도록 신자들을 설득한 그는 박해 중에 몰수당했던 재산을 다시 돌려받는 것도 거절한 채 약간의 땅을 손수 가꾸면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고 그러던 중 260년 1월 14일 평화롭게 선종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의 선종 연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으며 순교한 것은 아니지만 박해와 고통을 평생 견뎌냈기에 ‘피 흘리지 않은 순교자’로 공경받기도 합니다. 놀라는 성 펠릭스를 기념하여 봉헌된 성당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며 그의 유해는 그곳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5세기 초에 놀라의 주교가 된 성 바울리노(Paulinus, 6월 22일)가 자신이 존경하던 성 펠릭스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지어 내부를 성경 내용의 벽화로 장식하였고 많은 순례자가 성 펠릭스를 순례하고자 찾아왔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성 바울리노는 그에 대해 많은 시와 편지를 썼는데, 이는 성 펠릭스의 전기를 만드는 기초 자료가 되었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그에 대해 모두 1월 14일 목록에서 기록하였으며 특히 개정 “로마 순교록”은 놀라의 성 바울리노의 기록에 근거하여 감옥에서 박해 중에 극심한 고문을 당했지만 박해가 끝난 후 가난한 삶을 살다가 선종한 ‘굴복하지 않는 신앙의 증거자’였다고 그를 언급하였고 그의 선종 시기를 3세기 또는 4세기로 보았습니다.

 

5. 2월 3일 성인 펠릭스 1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연대미상

 

성 펠릭스와 성 심프로니우스(Symphronius), 성 히폴리투스(Hippolytus)와 동료 순교자들은 아마도 아프리카의 지방총독에 의해 고난을 겪고 순교한 듯 보여집니다.

 

6. 2월 3일 성인 펠릭스 2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리옹(Lyon)

활동연도 : +5세기

 

초기 순교록은 성 펠릭스와 성 루피키누스(Lupicinus)를 프랑스 남동부 리옹의 주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성인에 대해 성 루피키누스가 486년에 사망했다는 내용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7. 2월 11일 성인 펠릭스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아비티나(Abitina)

활동연도 : +304년

 

북아프리카의 아비티나에서 어느 사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주일을 맞이하여 경건하게 미사를 봉헌하던 도중에 군인들에게 49명의 남녀 신도들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사투르니누스 2세와 펠릭스, 마리아(Maria), 힐라리우스(Hilarius)란 자녀 넷을 둔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사제, 성 다티부스(Dativus), 성 암펠리우스(Ampelius), 그리고 다른 성 펠릭스가 다른 교우들과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성 다티푸스와 성 사투르니누스는 관리들에게 끌려가는 교우들의 맨 앞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순교를 다짐하였고 관리 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는데 관리는 그들의 용기와 믿음을 오히려 칭송하였으나 집정관이 있는 카르타고(Carthago)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먼 길을 가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았던 그들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과 노래를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성 다티푸스에게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어떤 집회를 하는지 집정관이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성 사투르니누스와 그 자녀들 역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며 신앙을 당당하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자 집정관은 그들에게 코와 귀를 베겠다고 위협하였고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천주께 감사”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집정관은 위협만 하고 그들을 감옥에 넣어 옥사시켰다고 전해지는데 그 당시에 이런 옥사는 보기 드문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8. 2월 21일 성인 펠릭스 1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메스(Metz)

활동연도 : +2세기

 

프랑스 메스의 제3대 주교로 전해지는 성 펠릭스는 사도 후 시대에 이어 바로 40년 동안 메스의 주교좌를 지켰습니다.

 

9. 2월 21일 성인 펠릭스 2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하드루메툼(Hadrumetum)

활동연도 : +434년경?

 

옛 “로마 순교록”은 많은 순교자가 북아프리카에서 로마제국의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던 하드루메툼(오늘날 튀니지의 수스[Sousse] 인근)에서 탄생했다고 2월 21일 목록에서 전해주었습니다. 434년경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는 반달족의 박해 중에 순교한 그들 중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로는 성 펠릭스와 성 베룰로(Verulus), 성 사투르니노(Saturninus), 성 세르불로(Servulus), 성 세쿤디노(Secundinus), 성 시리치오(Siricius), 성 포르투나토(Fortunatus)가 있고 그 외에도 16명이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그들이 반달족의 박해 때가 아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에 순교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들의 이름을 역사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더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10. 2월 23일 성인 펠릭스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브레시아(Brescia)

활동연도 : +650년

 

성 펠릭스는 북 이탈리아의 브레시아의 제20대 주교로 랑고바르드족(Langobard) 아리우스파와 다른 이교도들에게 점령된 파란 많은 시절에 주교좌를 40년 이상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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