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Anne)
1. 7월 23일 성녀 안나
신분 : 동정녀, 은수자
활동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 +918년경
같은이름 : 애나, 애니, 앤, 낸시, 니나, 수산나, 수잔, 수잔나
성녀 안나는 안나(Anna)라고도 하고 수산나(Susanna)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태생으로 일찍이 부친을 여의었지만 어머니는 딸을 돌보지 않았고 뛰어난 미모를 갖추었던 안나에게 재산과 지위를 이용하여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온갖 청혼을 뿌리쳤습니다. 황제 집안인 아가레누스(Agarenus)라는 청혼자는 그녀를 끊임없이 들볶고 행패를 부려 안나는 도망갈 결심을 하게 되고 이것은 안나가 은수자가 되는 계기가 됩니다.
우선 안나는 25세에 레우카디아(Leucadia)로 도망가 그곳의 한적한 곳에서 하느님만을 섬기며 완전한 고독 속에서 생활하였고 이후로 50년간 은수자 생활을 하였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그녀의 무덤에서 기도하면 즉시 치유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2. 7월 26일 성녀 안나
3. 6월 7일 복녀 안나(성 바르톨로메오의) (Anne of St. Bartholomew)
신분 : 수녀
활동연도 : +1626년
같은이름 : 낸시, 니나, 애나, 애니, 앤
아빌라에서 4마일 떨어진 알멘드랄(Almendral)에서 농사짓던 페르디난도 가르시아(Ferdinand Garcia)와 마리아 만자나(Maria Manzanas)의 딸인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의 안나(Anna)는 에스파냐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a of Avila)가 위대한 하느님의 종이라고 칭찬하였던 그녀의 특별한 동료였습니다. 20세까지 양치기로 일하던 그녀는 그 후 아빌라의 성 요셉 수도원에 입회 허가를 받아 카르멜회 수녀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7년간 늘 안나를 곁에 두고 모든 여행을 함께 하였던 성녀 테레사는 카르멜의 개혁 사업에 있어서도 안나만큼 성녀 테레사를 협력한 인물이 없었다고 합니다. 안나는 수차례에 걸쳐 검은 수건을 써야 한다고 했으나 늘 거절하였던 안나는 계속 평수녀로 살았으며 성녀 테레사 역시 안나의 품속에서 마지막 숨을 쉬었고 안나는 그 후로는 6년간 아빌라에서 조용히 살았습니다.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 설립을 프랑스에서 종용하자, 테레사의 후임자인 예수의 안나 수녀는 성 바르톨로메오의 안나 수녀를 포함한 5명의 수녀를 파견하였고 안나는 그 후 퐁투아즈(Pontoise) 수녀원의 원장, 그다음에는 투르(Tours)의 원장이 되었고 네덜란드에 카르멜 수도원을 세웠을 때는 몽스(Mons)로 가게 되었고 1612년에는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en)에 수녀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안나가 1612년에 사망하자 그녀의 시신에 달린 묵주에 친구하러 2천 명의 주민들이 줄을 설 정도로 매우 빨리 그녀에 대한 공경이 일어났습니다. 성 바르톨로메우스의 안나는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1917년 5월 6일 시복되었습니다.
4. 9월 20일 성녀 김장금 안나 (金長金 Anne)
신분 :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 한국(Korea)
활동연도 : 1789-1839년
같은이름 : 낸시, 니나, 애나, 애니, 앤, 김 안나, 김안나
서울 출신인 성녀 김장금 안나(Anna)는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으며 중년에 이르러 과부가 된 후로는 늙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지극 정성으로 어머니에게 효도하였습니다. 이광렬 요한(Joannes)의 집 곁에 살았던 안나는 두 집안이 화목하여 한 집안이나 다름없었는데 그러한 관계로 그 해 4월 7일 같이 체포되어 함께 고문과 문초를 받았으며 형조로 옮겨져 사형이 선고되었고 옥에 갇힌 지 3개월 만인 7월 20일에 51세의 나이로 그녀는 서소문 밖에서 참수 치명하였습니다.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1925년 7월 5일 시복되었고,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4년 5월 6일 시성되었습니다.
5. 9월 20일 성녀 박아기 안나 (朴阿只 Anne)
신분 : 부인, 순교자
활동지역 : 한국(Korea)
활동연도 : 1783-1839년
같은이름 : 박 안나, 박안나, 낸시, 니나, 애나, 애니, 앤
한강 기슭의 한 작은 촌락에 살던 어느 교우의 집안에서 태어난 성녀 박아기 안나(Anna)는 기억력이 천성적으로 둔해 교리문답과 기도문 배우기를 매우 힘들어하였는데 “나는 천주를 내가 원하는 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마음껏 사랑하기로 힘을 쓰겠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합니다. 태 프란치스코와 18세에 결혼하여 2남 3녀를 낳았으며 열심히 자녀들을 양육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대하여 특별한 신심을 가졌던 안나는 구세주의 오상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으며 박해가 일어나자 자녀들에게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도 순교하기를 열망하였는데 그러던 중 남편과 맏아들과 함께 1839년 2월경에 체포됩니다. 남편과 장남은 배교하여 곧 풀려났지만, 다리뼈가 허옇게 드러나도록 혹독히 맞아도 박 안나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배교한 남편 프란치스코와 아들이 매일 찾아와 참혹한 집안의 형편과 늙은 어머니의 고통, 어린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배교하라고 애걸복걸하였던 것은 매우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지만 그럼에도 안나는 이러한 유혹을 물리쳤으며 “아니, 며칠 더 살아 보려고 영원한 죽음을 당할 위험을 무릅쓴단 말이오? 나보고 배교하라고 원하기는커녕 끝까지 항구하라고 격려해야 되지 않겠소? 당신들이야 말로 어서 천주께 회두하시오, 그리고 내 행복을 부러워하시오.” “네 남편과 아들은 옥에서 풀려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너도 한 마디만 하면 이런 은전은 입을 수 있다. 그런데 집안 식구들이 그렇게 조르는데도 너는 도무지 마음을 굽히지 않으니 네 마음은 쇳덩어리 같이 인정이 도무지 없구나. 그래 삶이란 것이 그다지도 나쁜 것이란 말이냐?” 하며 포장이 달래니, “제 남편과 아들이 배교한 것이 제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는 신앙을 보존하고 신앙을 위하여 죽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형조에서는 1839년 5월 10일 다음과 같이 주청을 올렸습니다.
“마님이라고 불리는 朴女 아기는 사서 읽는 것으로 집안일을 삼고 추한 그림을 훌륭한 신(神)같이 공경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 뒤로 물러나지 않으리라고 맹세하였나이다. … 사형을 선고하였으니 재가하심을 청하나이다.”
박 안나는 57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으며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1925년 7월 5일 시복되었고,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4년 5월 6일 시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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