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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아녜스(Agnes) 축일 1. (1-2) _ 9월 20일, 1월 21일

 

아녜스(Agnes)

 

아녜스는 서울 대교구에서 조사한 가장 많은 세례명 중 6위를 차지한 세례명으로 주변에서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는 세례명입니다.

또 효주 아녜스는 배우 한효주의 세례명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세례명을 아녜스로 결정하신 분은 각 성녀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세요.:))

 

1. 9월 20일 성녀 김효주 아녜스 (金孝珠 Agnes)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 한국

활동연도 : 1816 - 1839년

같은이름 : 김 아녜쓰, 김아녜스, 아그네스, 아네스, 아녜스 

 

성녀 김효주 아녜스는 서울 근교 밤섬이란 마을의 어느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어머니는 6남매의 자녀와 함께 입교하여 열심한 신자 생활을 하였는데 아녜스는 성교회에 입교한 지 오래지 않아 벌써 탁월한 모범을 보였고 언니 콜룸바(Columba)와 동생 클라라와 함께 몸과 마음을 주님께 바쳐 동정을 지키기로 서약하고 아름다운 덕을 쌓았습니다.

이들 자매는 모친을 잃은 뒤에는 서울에서 20리가량 떨어진 용머리 마을의 오빠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기해년(1839년) 5월 3일 포졸들이 서울에서 20리 떨어진 곳에 있는 김 안토니우스(Antonius)의 집을 포위했으나, 안토니우스는 그들이 올 것을 눈치채고 이미 가족을 데리고 피신한 후였고, 그의 집에는 효주 아녜스와 효임 콜룸바, 세 살 된 아이만 남아 있다가 포졸들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포장은 효주 아녜스 자매를 어르기도 하고 별별 약속을 다하며 배교시키려 하였으나 거절하였으며 이에 포장은 혹독한 형벌을 가하여 효주 아녜스는 9월 3일에 순교한 6명의 신자 중에서 가장 악독하고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와 마리아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 포졸들과 관원들이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였지만, 효주 아녜스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침묵하며 기도를 드리고 마음속으로 우리 구세주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포장은 이와 같이 훌륭한 항구심이 어떤 마력의 힘 때문이라 생각하게 되고 등에 몇 가지 주문을 쓰게 하고, 불에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그 글자들을 열세 군데나 뚫게 하지만 이러한 형벌에도 그녀는 전혀 고통을 모르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 후 포졸들은 효주 아녜스를 끄집어내어 온갖 비웃음과 욕설을 퍼부었지만, 효주 아녜스는 그 괴로움을 달게 참으며 굳게 마음을 가졌고, 더욱더 열심히 자기의 고통을 주님께 바치며 묵묵히 참았습니다.

이러한 형벌을 가한 후, 포장은 옷을 벗긴 채로 그녀를 죄수들의 감방에 들여보내 갖은 욕을 당하게 하였으나 동정녀들의 천상배필이 그녀를 구원하러 오셔서 초인적인 힘을 넣어주어 한 사람이 남자 열 사람을 능가할 만큼 힘을 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어떤 신비스러운 힘에 눌려 마침내는 옷을 돌려주고 그녀를 여자 감방으로 데려갔는데 5월 9일 효주 아녜스는 언니인 효임 콜룸바와 함께 형조로 이송되었고, 5월 12일에는 형조판서 앞에 출두해서 그동안 감옥에서 당한 여자로서의 모욕을 호소하자, 형조판서는 이 같은 처사를 저지른 포장과 포졸들을 처벌하였습니다.

그다음부터 여교우들은 악형보다도 더 괴로운 그와 같은 모욕은 당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효주 아녜스는 언니 효임 콜룸바보다 먼저 순교의 칼을 받고 순교하니, 때는 1839년 9월 3일이요 나이는 24세였습니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2. 1월 21일 성녀 아녜스 

성녀아녜스-1월21일
성녀 아녜스 (1월 21일)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 로마 

활동연도 : +304년?

같은이름 : 아그네스, 아네스 

 

성녀 아녜스는 로마의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성인 중의 한 명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로마의 어느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뛰어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평소 늘 순결한 생활을 희구하며 하느님께 동정을 바칠 결심을 하였으나 그녀가 소녀티를 벗자마자 많은 젊은이가 그녀에게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성녀 아녜스는 집을 떠나 순교할 마음을 먹었고 그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어느 청혼자의 고발로 신자임이 드러나 총독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불과 만 13세에 지나지 않았던 성녀 아녜스는 온갖 고문 기구를 늘어놓고 위협하는 총독의 심문에 직접 정면으로 맞섰는데 격노한 총독은 그녀를 로마의 한 매음굴로 보냅니다.

하지만 성녀 아녜스는 영웅적인 용덕(勇德)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정결을 성공적으로 지킬 수 있었고 다시 총독 앞으로 불려 간 성녀 아녜스는 참수형을 받아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됩니다.

성녀 아녜스에 대해 전해오는 많은 전설 들 중에는 신빙성이 없는 것들도 있지만, 그녀가 어린 나이에 순교자로서 처참하게 죽었고, 로마의 노멘타나 가도(Via Nomentana) 근처 묘지에 안장되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성녀 아녜스는 순결과 순수함을 추구하는 동정녀(소녀)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그녀의 순결과 순교를 표현하기 위해 '어린양'(Agnus 아뉴스; Agnes 아녜스)과 함께 종려 나뭇가지를 든 모습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성녀 아녜스는 고대부터 로마 미사경본 감사기도 제1양식(로마 전문)에서 기억하는 7명의 성녀 중 한 명으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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