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Agnes)
같은이름 아그네스, 아네스
3. 3월 2일 성녀 아녜스
신분 : 공주, 수녀
활동지역 : 보헤미아 (Bohemia)
활동연도 : 1211-1282년
성녀 아녜스는 성 벤체슬라우스(Wenceslaus, 9월 28일) 왕의 후손으로 보헤미아의 왕좌에 오른 오토카르 1세(Ottokar I)와 헝가리 왕국의 공주인 콘스탄스(Constance) 사이에서 1197년에 태어났습니다.
1211년 프라하(Prague)에서 태어난 그녀는 헝가리의 성녀 엘레사벳(Elisabeth, 11월 17일)과는 사촌 간이며 당시 관습대로 불과 세 살 때 슐레지엔(Schlesien, 실레지아)의 공작 하인리히(Heinrich)의 아들인 볼레슬라우스(Boleslaus)와 약혼하고, 약혼자의 어머니가 트레브니츠(Trebnitz)에 세운 시토회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가 6살 때 약혼자가 죽음으로써 보헤미아로 돌아왔고, 8살 때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레데릭 2세(Frederick II)의 아들인 하인리히와 약혼하여 이번에는 오스트리아로 가서 독일어와 그곳의 풍습을 익히게 됩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수도 성소에 대해 생각을 조금씩 키워온 성녀 아녜스는 늘 하느님께 굳은 신앙을 표현하고자 애썼고 자기 혼자서 매우 엄격한 생활을 하며 덕을 닦았습니다.
그녀는 차츰 나이가 들면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동정 생활을 갈구하게 되었고 꼭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마침 하인리히 왕자가 정치적 이유로 오스트리아 공작의 딸과 결혼하면서 기회가 오는 듯했으나 평소 그녀를 눈여겨본 프레데릭 2세 황제의 청혼을 받게 되는데 결혼과 수도 성소 사이에서 고민하던 성녀 아녜스는 황제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게 탄원하여 황제와의 약혼을 무효로 합니다.
황제 또한 다른 남자와의 결혼이 아니라 천상 임금님께 간다는 그녀의 뜻을 이해하고 파혼을 받아들였으며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더욱 열렬히 기도하고 고행을 실천하며 화려한 궁중 의상 밑에 고행복을 입고 지냅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맨발로 성당을 다녀왔으며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과 같이 하느님의 은총에 전적으로 응답할 준비를 합니다.
1225년 작은 형제회 수사들이 프라하에 도착해 수도회의 정신을 소개하자 그녀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의 수도 정신에 완전히 매료되고 그녀는 오빠에게 하사받은 토지에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한 병원을 지어 작은 형제회에서 운영하도록 하였으며 1234년에는 프라하에 클라라회의 수도원(후에 성녀 아녜스 수녀원으로 불림)을 세우고, 클라라회의 정신과 규칙대로 올바로 운영될 수 있도록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Clara, 8월 11일)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1236년 봉쇄 수녀원인 클라라회에 입회하여 공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수녀원에 딸린 병원에서 나병 환자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으며 수녀원의 하찮은 일까지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등의 놀라운 성덕을 쌓았습니다.
모범적 수도자로 연륜을 쌓은 그녀는 후에 수녀원의 원장으로서도 최선을 다하다가 1282년 3월 2일(또는 6일) 선종하였습니다.
서로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20여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던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는 보헤미아 혹은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로 불리는 그녀를 ‘나의 반쪽’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성녀 아녜스는 1874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9년 11월 1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축일은 선종일인 3월 2일 또는 6일에 기념하고 있습니다.
4. 4월 20일 성녀 아녜스
신분 : 수녀원장
활동지역 :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
활동연도 : 1268-1317년
성녀 아녜스는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 그라치아노 베치오(Gracchiano-Vecchio)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성녀 아녜스는 6살 때부터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부모에게 졸라 9살의 어린 나이에 고향 근처에 있는 몬테풀치아노의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로부터 4년 뒤 성녀 아녜스는 교황 니콜라우스 4세(Nicolaus IV)로부터 프로체나(Procena)에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는 것을 도우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성녀 아녜스는 그곳에서 놀라운 성덕으로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었고, 결국 15세의 나이로 최연소 원장이 됩니다.
1300년경 몬테풀치아노 사람들이 새로운 수도원을 건립하기 위해 그녀가 돌아오기를 청했으며 몬테풀치아노로 돌아온 그녀는 성 도미니쿠스(Dominicus)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수녀원을 세워 1317년 그곳에서 선종하여 묻힐 때까지 원장의 책임을 다합니다.
그녀는 놀라운 금욕생활을 실천했고, 수많은 환시와 기적 그리고 다른 놀라운 일들도 많이 일으켰는데 그녀의 기적 중에서 유명한 것은 빵의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배불리 먹이셨듯이, 성녀 아녜스는 빵 한 덩이로 가난한 수녀원의 모든 이들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엄격한 금식으로 고행을 실천하다가 영성체를 잊은 날에는 깊은 슬픔에 빠진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 성체를 모시도록 해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던 성녀 아녜스는 1316년부터 급속히 나빠져 의사의 권유로 온천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수녀원으로 돌아왔고 이듬해 4월 20일 선종해 수녀원 성당에 안치됩니다.
이후 그곳은 많은 이들이 찾는 순례지가 되었으며 교회 미술에서 성녀 아녜스는 도미니코회 수녀원장으로서 어린 양, 백합, 책 등과 함께 묘사됩니다.
1608년 복자품에 올랐고, 1726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5. 11월 16일 성녀 아녜스
신분 : 수녀원장
활동지역 : 아시시(Assisi)
활동연도 : 1197/8 - 1253년
성녀 아녜스는 1197년 또는 1198년에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귀족 출신인 파바로네(Favarone)와 오르톨라나(Ortolana)의 딸로 태어났으며 카테리나(Caterina)라는 이름을 얻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녀의 언니는 성녀 클라라(Clara, 8월 11일)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가족의 극심한 반대를 물리치고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언니인 성녀 클라라는 1212년 3월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밤에 부모 몰래 집을 빠져나와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 성당에서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수도복을 받고 그의 첫 여성 동료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16일 뒤에 성녀 아녜스 또한 불과 15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와 언니가 머물고 있던 산 안젤로 디 판초(San Angelo di Panzo) 성당으로 가서 수도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녀가 수도 생활을 시작한 후 집안의 단속은 더 심해지지만 수도 생활을 향한 성녀 아녜스의 열망을 꺾지는 못합니다.
두 딸을 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그녀의 아버지는 강제로라도 성녀 아녜스를 데려오려고 몇몇 친척을 수도원으로 보내 그들은 강제로 그녀를 끌고 가려했지만, 성녀 아녜스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버티어냅니다.
결국 하느님의 힘이 그녀를 감싸고 있다고 느낀 친척들은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과정을 거쳐 그녀는 성 프란치스코에게 수도복을 받으며 아녜스라는 수도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언니와 몇 명의 자매들과 함께 산 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지도를 받아 공동생활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후에 클라라 수도회로 불리게 된 ‘가난한 자매들의 수도회’의 시작입니다.
1219년 성 프란치스코가 세운 피렌체(Firenze) 근교 몬티첼리(Monticelli)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언니와 함께 생활하던 산 다미아노 모원을 떠나게 되는데 그 후 만투아(Mantua), 베네치아(Venezia), 파도바(Padova) 등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에 수도원을 설립하였으며 언니를 도와 클라라 수도회의 청빈 정신을 고수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덕이 있는 사람으로서 늘 친절하게 자매들을 지도하였습니다.
1253년 성녀 아녜스는 중병으로 병상에 누운 성녀 클라라를 간호하기 위해 아시시로 돌아오며 8월 11일 성녀 클라라의 임종을 지킨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11월 16일 언니를 뒤따라 하느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 성당에 안치되었는데, 그녀의 묘소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1753년에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는 그녀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였으며 로마 순교록은 그녀의 선종일인 11월 16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으며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는 11월 19일로 옮겨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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