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나(Savina)
같은이름 : 싸비나
1. 1월 30일 성녀 사비나
신분 : 부인
활동지역 : 밀라노(Milano)
활동연도 : +311년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귀족인 발레리우스(Valerius)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사비나는 밀라노 남쪽 로디(Lodi)의 트리시노(Trissino) 가문의 귀족과 결혼하였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녀 사비나는 신앙생활과 자선사업에 헌신하였는데 특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가 극심할 때는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돌보는 데 힘썼으며 그들이 순교한 후에는 시신을 찾아 매장해 주었습니다. 신앙을 고백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밀라노에 주둔하던 군인인 성 나보르(Nabor)와 성 펠릭스(Felix, 7월 12일)가 로디 베키오(Lodi Vecchio)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자 그녀는 밤중에 시신을 수습하여 일단 자신의 소유지에 매장하였습니다.
박해가 끝난 후 밀라노로 그들의 유해를 모셔온 그녀는 발레리우스 가문의 경당에 모셨고, 그 위에 새로운 성당(Santi Nabore e Felice)이 세워져 그들의 이름으로 봉헌되었습니다. 성녀 사비나는 그 후 성 나보르와 성 펠릭스의 무덤에서 기도와 단식을 실천하며 살다가 기도를 하던 중 선종하였고 그녀의 유해는 순교자들 옆에 묻혔으며 1798년, 1799년 경 두 순교자의 유해와 함께 그녀의 유해는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대성당(Basilica di Sant’Ambrogio, 옛 순교자 대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순교자 성 나보르와 성 펠릭스의 무덤에서 기도하던 신심 깊은 성녀 사비나가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었다고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전례에서 기념하는 날과 같은 1월 30일 목록에서 신심 깊은 성녀 사비나가 가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었다고 전해주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더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2. 8월 29일 성녀 사비나 1
신분 : 동정녀
활동지역 : 트루아(Troyes)
활동연도 : +3세기
트루아의 성 사비니아노(Sabinianus, 1월 24일)의 여자 형제로 추정되는 성녀 사비나는 그동안 행방불명 되었었던 성 사비니아노를 프랑스의 트루아에서 찾았는데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성 사비니아노는 아버지에게 위협을 느껴 트루아로 도망갔다고 전해집니다. 오빠를 찾던 성녀 사비나는 꿈속에서 천사의 인도를 받고 트루아로 갔지만 성 사비니아노는 이미 아우렐리아누스 황제(270~275년 재위)의 박해 때 순교하여 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성녀 사비나 역시 오빠의 무덤을 찾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종하였는데 그녀의 중재기도를 통해 트루아와 상스(Sens), 그리고 그 지방 전역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높은 공경을 받게 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성 사비나는 교회 미술에서 성 사비니아노와 함께 그려집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트루아 근방에서 미덕과 기적으로 유명했던 동정녀인 성녀 사비나가 있었다고 8월 29일 목록에서 있었다고 전해주었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더는 성녀 사비나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3. 8월 29일 성녀 사비나 2
신분 :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 +126년경
원래 아브루초(Abruzzo) 지역의 아베차노(Avezzano)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 성녀 사비나는 이탈리아의 로마의 원로원 의원인 발렌티누스(Valentinus)의 미망인입니다. 6세기경에 기록된 성녀 사비나의 순교록은 역사적 가치는 부족하지만 이에 따르면 시리아 안티오키아(Antiochia) 출신의 성녀 세라피아(Serapia, 9월 3일)는 그녀의 하녀였는데 성녀 사비나는 그녀의 하녀였던 성녀 세라피아의 인도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에 입문하였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 재위)의 박해 때 그들은 모두 순교하였는데 126년경, 성녀 세라피아가로마의 신에게 희생제물 바치기를 거부하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던 중에도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가 참수형을 받고 먼저 순교하였고 그녀의 시신을 성녀 사비나는 로마의 빈디치아누스(Vindicianus) 언덕에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무덤에 안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녀 사비나 역시 한 달 뒤에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하였으며 빈디치아누스 공원 근처에 안장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신앙 때문에 모진 고문을 겪은 성녀 세라피아가 9월 29일에 순교하였고 성녀 사비나가 빈디치아누스 들판 근처의 자신의 무덤 자리에 그녀를 묻어주었는데, 한 달 뒤에 성녀 사비나가 순교하여 무덤을 그녀와 함께 장식한 후 기도의 장소로 봉헌한 9월 3일에 그녀의 축일을 기념한다고 9월 3일 목록에서 기록하였습니다. 교황 성 첼레스티노 1세(Coelestinus, 7월 27일) 재위 기간(422~432년)에 성녀 사비나의 유해는 일리리아(Illyria)의 베드로(Petrus) 신부가 로마의 아벤티노(Aventino) 언덕에 건축해 그녀의 이름으로 봉헌한 성당에 모셔졌고 그녀는 주부와 아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로마에서 성녀 사비나 대성당의 주보성인인 성녀 사비나를 기념한다고 8월 29일 목록에서 기록하였으나 성녀 세라피아에 대해서 더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4. 10월 28일 성녀 사비나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아빌라(Avila)
활동연도 : +305년경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성 빈첸시오(Vincenti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에 에스파냐 중서부에 살던 젊은 그리스도인으로 당시 다키아누스 총독이 그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고 황제의 명에 따라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성 빈첸시오는 황제 앞에 끌려가 과거의 우상숭배가 아닌 진정한 종교, 바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며 이 때문에 모든 배교 요청을 거부한다고 당당히 말하였습니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감금되었지만 경비병들은 그의 용맹한 삶과 굳은 믿음에 감동하여 개종하였고 그의 자매였던 성녀 사비나와 성녀 크리스테타(Christeta)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게 됩니다.
톨레도(Toledo) 서쪽 탈라베라데라레이나(Talavera de la Reina)에서 아빌라(Avila)로 도망가던 그들은 결국 체포되어 채찍과 몽둥이로 맞고 감금되었는데 옛 “로마 순교록”은 참혹한 고문을 받은 그들이 아빌라에서 순교하였다고 10월 27일 목록에서 전해주었습니다. 먼저 고문대에 묶인 그들은 팔다리가 부러지고 빠지도록 당기는 고통을 당한 후 무거운 돌을 머리 위에 얹고 머리가 깨지도록 충격을 주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무거운 돌과 바위에 그들의 시신이 묻혔고 나중에 그들의 무덤 위에 대성당이 지어졌으며 1062년에 부르고스(Burgos)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옮겨진 그들의 유해는 다시 1175년 아빌라로 돌아왔고, 그들의 유해 위에 새로운 대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14세기에 완성되었는데 그 성당이 바로 오늘날 아빌라에 있는 성 빈첸시오 대성당(Basilica of San Vicente)입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28일로 옮겨 아빌라의 순교자로 공경받고 있는 이들의 축일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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