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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빈첸시오(Vincent) 축일 4.(17-20) _ 12월 20일, 9월 20일, 1월 1일, 9월 28일

 

빈첸시오(Vincent)

같은이름 : 뱅상, 빈센트, 빈첸티오, 빈첸시우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원선시오 

 

17. 12월 20일 성인 빈첸시오 로마노 (Vincent Romano)

빈펜시오로마노(12월20일)
성 빈첸시오 로마노 ( 12월 20일)

신분 : 신부 

활동연도 : 1751-1831년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근방의 토레 델 그레코(Torre del Greco)에서 태어난 빈첸시오 로마노(Vincentius Romano)는 본당사제로서의 단순한 삶과 고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특히 1794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 이후, 토레 델 그레코 공동체의 물질적이고 영성적인 재건을 위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소외된 이들과 젊은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1831년 12월 20일 자신의 고향에서 선종하였으며 1963년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18년 10월 14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빈첸초 로마노(Vincenzo Romano)로도 불립니다.

 

18. 9월 20일 성인 빈첸시오 마델가리오(Vincent Madelgarius)

신분 : 수도원장 

활동연도 : 615-687년

 

성 빈첸시오 마델가리우스(Vincentius Madelgarius)는 성녀 발데트루디스(Waldetrudis, 4월 9일)의 남편으로 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들도 모두 성인 성녀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653년 그의 아내인 성녀 발데트루디스는 수녀원으로 가고, 그 자신은 베네딕토 회원이 되면서 빈첸시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는 것 외에 그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19. 1월 1일 성인 빈첸시오 마리아 스트람비 (Vincent Mary Strambi)

빈첸시오-마리아-스트람비(1월1일)
성 빈첸시오 마리아 스트람비 (1월 1일)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마체리타(Macerata)

활동연도 : 1745-1824년

 

성 빈첸시오 마리아 스트람비(Vincentius-Maria Strambi)는 이탈리아의 치비타베키아(Civitavecchia)에서 어느 약제사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는 아주 짓궂게 장난치는 아이였지만, 맨발이거나 혹은 남루한 옷을 입은 부랑아를 보면 자기의 외투와 신발을 벗어주는 갸륵한 소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교구사제가 될 마음으로 공부했으나 서품 직전에 십자가의 성 바오로(Paulus, 10월 19일)의 영향을 받아 예수 고난회원이 되려고 하였는데 극심하던 부모의 반대를 이기고 마침내 수련을 받게 됩니다.

 

그는 수도원 내의 여러 직책을 맡았고 1781년에 관구장이 되었으며, 또 1801년에는 마체라타와 톨렌티노(Tolentino)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그의 불굴의 노력은 이탈리아 전역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에게 놀라운 쇄신을 불러일으키는 주교로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1808년 그는 나폴레옹의 정책에 반대하여 추방되었으나, 1813년 나폴레옹이 실각함으로써 교구로 돌아왔고 교황 비오 7세(Pius VII) 서거 때에 그도 역시 사임하였으나, 그의 열렬한 친구이던 레오 12세(Leo XII)의 등극과 더불어 교황의 고문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이 모든 직책에서도 그는 수도생활의 정신을 조금도 흐트러트리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하며 복녀 안나 마리아 타이기(Anna Maria Taigi, 6월 9일)가 예언한 12월 31일에 마지막으로 성체를 모셨고, 1824년 1월 1일 79살의 생일날에 하늘나라로 돌아갔습니다.

1925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20. 9월 28일 성인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라 크루스 (Vincent Shiwozuka de la Cruz)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나가사키(Nagasaki)

활동연도 : +1637년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는 첫 번째 필리핀인 성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첫 필리핀 순교자입니다. 그는 1600년경 마닐라(Manila)의 비논도(Binondo)에서 신자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타갈로그어를 배웠고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스페인어를 배웠습니다.

그는 비논도 성당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성사 보조자와 성사 기록자로 봉사하였으며 아마도 서예로 생계를 유지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적 혹은 공적인 용도의 서류를 아름다운 필기체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직업은 안정되고 교육받은 사람임을 암시하는데,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636년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고발됩니다.

그릇된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성 라우렌티우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탔는데 그 배에는 세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우스 곤살레스(Antonius Gonzalez), 성 귈레르무스 쿠르테(Guillermus Courtet),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Michael de Aozaraza), 일본인 사제인 성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나환자인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Lazarus)가 타고 있었는데 바다에 나오고 나서야 그는 그 배가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에 도착한 성 라우렌티우스와 동료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는데 그들은 며칠 동안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으며 성 라우렌티우스는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의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며, 자신이 죽는 대신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1637년 9월 27일 그는 교수대에 거꾸로 달려 구덩이로 떨어졌고 이틀 동안의 고통 후에 그는 출혈과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며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같이 이 시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순교한 15명의 동료들이 있는데, 그들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함께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습니다.

 

빈첸시오(Vincent) 축일 1.(1-5) _ 1월 22일, 1월 27일, 4월 19일, 4월 20일

 

빈첸시오(Vincent) 축일 2.(6-12) _ 5월 9일, 5월 24일, 6월 9일, 7월 24일, 8월 6일, 8월 25일

 

빈첸시오(Vincent) 축일 3.(13-16) _ 9월 1일, 9월 11일, 10월 27일, 9월 27일,

 

빈첸시오(Vincent) 축일 5.(21-24) _ 3월 8일, 9월 3일, 1월 22일,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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