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Benedict)
같은이름 : 베네딕도, 베네딕또, 베네데토,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베네딕트, 분도
1. 2월 11일 성인 베네딕토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아니아네(Aniane)
활동연도 : 747-821년
성 베네딕토는 프랑스 남부 마구엘론(Maguelone)의 백작이자 서고트족(Visigoth)의 귀족 아이굴프(Aigulf)의 아들로 태어나 페피누스 3세(Pepinus III)의 궁정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샤를마뉴(Charlemagne)의 군대에서 복무하였던 그는 그러던 중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774년경 수도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종으로 일생을 봉사하며 살기로 결심합니다. 군대를 떠나 상센(Saint-Seine) 수도원에 입회한 그는 동방의 수도생활을 동경하여 780년경 아니아네로 이주해 동방의 수덕생활을 실천하는 수도원을 설립하였으며 782년경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을 다시 설립하였으며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성 베네딕토는 수도생활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며 각 수도원이 사용하고 있던 여러 규칙서를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서와 비교 연구하여 개혁의 출발점은 임의 해석이 아닌 수도 규칙서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샤를마뉴는 그에게 프랑크 왕국 내 수도원 개혁을 위임하였으며 그의 사후 왕위를 계승한 경건왕 루도비쿠스(Ludovicus) 역시 재라 그에게 수도원 개혁을 위임하였습니다. 그는 경건왕 루도비쿠스 시절 코르넬리뮌스터(Cornelimnster) 수도원을 설립하고 개혁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당시에 사용되던 25개의 수도 규칙서를 모은 “수도 규칙서 전집”(Codex Regularum)과 그 규칙들을 베네딕토 수도 규칙서와 병행하며 주석한 “규칙서들의 대조”(Concordia Regularum)를 저술한 그는 결국 수도원 연합의 수석원장이 되어 모든 수도자가 같은 수도 규칙서를 따르며 세상을 포기하고 구원에 다다르기를 희망하였습니다. 816년과 817년 아헨 교회회의에서 루도비쿠스 왕은 성 베네딕토의 수도원 개혁 의지를 담아 수도자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규칙인 “수도회 참사규칙”(Capitulare Monachorum)’을 공표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서방 수도생활의 재건자로 추앙받고 있으며 제2의 베네딕토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의 축일은 2월 12일에 기념하기도 합니다.
2. 3월 11일 성인 베네딕토
신분 : 대주교
활동지역 : 밀라노(Milano)
활동연도 : +725년
성 베네딕토 크리스푸스(Benedictus Crispus)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나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대주교가 된 후 45년간 재임하였고 그 기간 중 어떤 종류의 소송에 연루되었으며 교황의 명에 따라 웨식스(Wessex)의 왕으로 로마에서 사망하여 성 베드로(Petrus)의 무덤 곁에 묻힌 성 카이드발라(Caedwalla, 4월 20일)를 위하여 비문을 작성하였다고 전해집니다.
3. 3월 23일 성인 베네딕토
신분 : 수도승, 은수자
활동지역 : 캄파니아(Campania)
활동연도 : +550년경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의 "대화집"에는 베네딕토라는 독수자를 꼭 기억하고 싶다고 적혀 있습니다. 성 대 그레고리우스 1 세에 의하면 성 베네딕토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에 살던 은수자로, 고트족(Goths)이 이탈리아를 점령했었을 때 화덕 속으로 그들의 손에 의해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전해지며 고트족은 이를 보고 결국 그를 석방해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성 베네딕토는 누르시아(Nursia)의 성 베네딕토(7월 11일)와 당대 사람으로 그와도 개인적인 친교를 나누며 지냈습니다.
4. 4월 4일 성인 베네딕토
신분 : 수사
활동연도 : 1526-1589년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의 메시나(Messina) 근처에서 노예로 일하던 아프리카 계통의 부모 밑에서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성 베네딕토 아 상토 필라델포(Benedictus a Sancto Philadelpho)는 어릴 적에 그의 주인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으나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공적으로 해를 입게 되는데 당시의 나이는 21세였습니다.
그러나 인내심과 놀라운 인품을 드러내어 이 위기를 극복한 그는 프란치스코 은수자 그룹에 들어갔으나 1564년에 이 그룹이 해산되자 팔레르모(Palermo)의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평수사로 입회합니다. 1578년에 새 원장을 뽑을 때 단순한 수도자이며 아는 체하지 않는 점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평수사인 성 베네딕토가 선출되었고 그는 이 직책을 하는 수 없이 수락하여 성공적으로 원장의 직무를 수행하였고, 작은 형제회의 규칙을 글자 그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후에는 수련장까지 겸하게 됩니다.
그의 이해심과 동정심은 치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으로 명성을 얻게 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는 만년에는 그가 처음에 하던 부엌일을 하면서도 아주 평화롭게 생활하였습니다. 그는 '흑인 베네딕토'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흑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누비아족(홍해 지방의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4월 4일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선종한 그는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1743년 5월 15일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8세(Piu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5. 4월 30일 복자 베네딕토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우르비노(Urbino)
활동연도 : +1625년
성 베네딕토는 이탈리아의 우르비노에서 태어나 마르코(Marc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그는 페루자(Perugia)와 파도바(Padova)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젊은 법률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로마(Roma)로 갔으나 법조계에서 만족할 수 없음을 알고 포솜브로네(Fossombrone)의 카푸친회에 입회하게 되지만 극심한 집안의 반대로 1584년에 비로소 파노(Pano) 수도원에서 서약할 수 있었는데, 이때 베네딕토라는 수도명을 받게 됩니다.
당시 총장이던 브린디시(Brindisi)의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7월 21일)를 수행하여 오스트리아(Austria)와 보헤미아(Bohemia) 등지를 3년간 순방하면서 성 베네딕토는 이단자와 타락한 가톨릭 신자들을 상대로 하는 설교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였고 이로 인해 높은 명성을 얻게 됩니다. 특히 하느님의 집을 보살피는 일에 정성을 다한 그는 주로 주님의 수난을 설파하였고 그리스도께서 밟으신 땅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표현하고자 하루에 한 시간씩 땅에 엎드려 묵상하면서 노력하였습니다. 1625년 매우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소 코르바로(Sasso Corbaro)에서 사순절 강론을 한 그는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여 포솜브로네에서 선종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희망과 신뢰를 두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즐겨하였으며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1867년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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