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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바울라(Paula) 축일(1-6) - 1월 5일, 1월 26일, 6월 3일, 6월 18일, 7월 20일, 8월 10일

 

바울라(Paula)

같은이름 : 빠올라, 빠울라, 파올라, 파울라

 

1. 1월 5일 성녀 바울라

신분 : 수녀

활동연도 : 1318-1368년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에서 1318년 태어난 성녀 바울라는 어린 시절 베네딕토회 카말돌리 연합회 수녀원에 맡겨진 이후 그들과 함께 그들과 함께 일생을 생활하였습니다. 그녀는 피사(Pisa)와 피렌체(Firenze) 간의 불화를 평화롭게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2. 1월 26일 성녀 바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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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바울라(1월 26일)

 

신분 : 과부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 347-404년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이자 그리스도교 신자 가정의 딸로 347년 5월 5일 태어난 성녀 바울라는 362년인 15살 때 율리아 가문의 이교도인 톡소티우스(Toxotius)와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서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이상적인 부부로 존경을 받았지만 379년인 성녀 바울라가 32세가 되던 해 남편은 사망하게 되고 성녀 바울라는 그 후로 평소 가까이 지내던 성녀 마르첼라(Marcella, 1월 31일)의 집으로 들어가 사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삶에 헌신하였고 엄격한 절제 생활을 실천하였습니다. 같은 뜻을 지닌 부인들이 모여 성녀 마르첼라의 집은 수도 공동체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살라미스(Salamis)의 성 에피파니오(Epiphanius, 5월 12일) 주교와 안티오키아(Antiochia)의 바울리누스(Paulinus) 주교를 만난 그녀는 그들에게 가르침을 들었고, 382년에 그들을 통해 로마에 온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를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만남이 인연이 되어 성 예로니모를 영적 지도자로 모신 그녀는 그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성 다마소 1세(Damasus I, 12월 11일) 교황이 선종한 뒤에 로마를 떠난 성 예로니모는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고 성녀 바울라는 384년경 큰딸인 블레실라(Blaesilla)가 세상을 떠나자 큰 슬픔에 잠기게 되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음 해에는 둘째 딸인 성녀 에우스토키움(Eustochium, 9월 28일)과 동료들과 함께 로마를 떠나 자신의 영적 스승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팔레스티나를 순례한 성녀 바울라 일행은 386년에 성 예로니모와 함께 이집트로 가서 니트리아(Nitria) 사막의 은수자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연구한 후 팔레스티나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 정착해 본격적인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성녀 바울라는 성 예로니모를 도와 자신의 재산으로 베들레헴에 세 개의 남자 수도원과 한 개의 여자 수도원을 세우는 데 경제적 뒷받침을 제공하였으며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도 지었습니다. 그녀는 여생을 여자 수도회의 지도자이자 성 예로니모의 절친한 친구, 협조자로서 기도와 고행, 애덕 실천에 전념하였으며 성 예로니모의 성경 연구와 번역 작업을 도우면서 본인 스스로도 성경 공부에 힘썼습니다. 402년경 병에 걸려 고생하던 그녀는 56세의 나이로 404년 1월 26일 선종하였고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성당 아래에 그녀의 시신이 모셔졌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 대성당에 15세기에 옮겨 모셔졌습니다.

 

 

성 예로니모는 그녀의 장례식에 추도사를 지어 바쳤으며 성녀 바울라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편의 서간에서 전해주었고, 나중에 그 내용은 그녀의 전기를 이루는 주요 기록이 되었습니다. 서간에서 성 예로니모는 성녀 바울라의 실천적 정신과 재치 등을 칭찬하였으며 지나친 그녀의 금욕에 대해 놀라워하였고 아낌없는 기부와 애덕 실천으로 인하여 생긴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경고하였습니다. 성녀 바울라가 선종한 후 수녀원 원장직을 이어받은 성녀 에우스토키움 역시 실제로 어머니의 아낌없는 자선으로 인해 생긴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고생하였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로마 원로원 가문 출신의 과부인 성녀 바울라가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재물을 나누어 주고 베들레헴 주님 탄생 현장으로 성녀 에우스토키움과 함께 가서 세속을 떠나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모두 1월 26일 목록에서 전해주었습니다. 성녀 바울라는 과부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3. 6월 3일 성녀 바울라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 니코메디아(Nicomedia)

활동연도 : +273년

 

감옥에 갇힌 성 루킬리아누스(Lucillianus, 6월 3일)와 그와 함께 순교한 네 명의 소년 순교자들을 도와준 인물인 성녀 바울라는 그러한 이유로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보내져 참수되었습니다. 다섯 명의 순교자와 그녀와의 연관은 후에 성녀 바울라가 성 루킬리아누스의 아내이며 다른 네 소년들의 어머니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4. 6월 18일 성녀 바울라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 +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성녀 바울라와 성 키리아쿠스(Cyriacus)는 에스파냐의 항구도시인 말라가(Malaga)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5. 7월 20일 성녀 바울라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연대미상

 

시리아의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성녀 바울라와 성녀 카시아(Cassia), 성 마크로비우스(Macrobi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사비누스(Sabin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와 다른 1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습니다.

 

6. 8월 10일 성녀 바울라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 +연대미상

 

그리스도인 처녀였던 성녀 바울라와 성녀 바사(Bassa), 그리고 성녀 아가토니카(Agathonica)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o)에서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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