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프나(Dymphna)
5월 30일 성녀 딤프나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 +7세기
같은이름 : 딘프나, 딤프네
전승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7세기에 켈트족(Celts)의 다몬(Damon)이라는 이교도 족장의 딸로 태어난 성녀 딤프나는 그리스도교에 헌신하던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어머니의 배려로 유아 세례를 받았고 그리스도교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이미 결혼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일생을 봉헌한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하였는데 얼마 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 밀려오게 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내를 깊이 사랑하였는데 아내가 죽자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광기 어린 사람으로 변해갔고 신하들이 강력하게 재혼을 권유하여 아내와 같은 여성을 찾으려 노력하였지만 그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점점 딸이 죽은 아내만큼 아름답게 성장하자 그녀와 결혼하려는 끔찍한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이렇게 끔찍하게 변해버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성녀 딤프나는 궁을 빠져나와 자신의 고해신부인 성 제레베르노(Gerebernus, 5월 15일)를 찾아가고 그의 도움을 받아 그와 함께 오늘날 벨기에의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 있는 안트베르펜(Antwerpen)으로 피신합니다. 이때 두 명의 동료도 그녀를 도와 같이 피신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함께 안트베르펜 근교 겔(Geel)이란 곳에 기도처를 세우고 은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겔에 정착한 성녀 딤프나는 성 제레베르노의 지도를 받아 은수자로 살면서 그 지역의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하여 쉼터를 짓고 봉사와 기도에 전념하였으나 분노한 성녀 딤프나의 아버지는 오래지 않아 사람들을 동원해 딸의 행적을 추적하였고 결국 딸과 동료들의 은신처를 발견하고 병사들과 함께 들이닥칩니다. 그는 병사들을 시켜 성 제레베르노 신부와 두 명의 동료를 살해한 후 성녀 딤프나에게 아일랜드로 돌아가자고 강요하였지만 그녀가 돌아가기를 끝까지 거부하며 저항하자 분노하여 직접 그녀의 아버지는 칼을 뽑아 자신의 딸을 참수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의 나이는 당시 15세였습니다. 성 제레베르노와 성녀 딤프나가 살해된 후 겔의 주민들에 의해 그들의 유해가 수습되어 근처의 동굴에 안장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13세기 무렵 동굴에서 마을 사람들은 빛나는 관에 안치된 두 시신을 발견하였는데 ‘거룩한 동정 순교자 딤프나’라고 새겨진 판이 그녀의 관 앞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들의 유해는 새로운 묘에 안장되었고 성녀 딤프나에 대한 “순교록”도 작성되었으며 겔에 14세기에 성녀 딤프나를 기념하는 새로운 성당이 건립되었고, 새로 마련된 무덤에 그들의 유해 또한 안장되었습니다. 후에 독일 지역의 크산텐(Xanten)으로 성 제레베르노의 유해는 재이장되었는데 유럽 전역에서 그때부터 성녀 딤프나 성당으로 많은 순례자가 찾아왔고, 뇌전증(간질)과 정신이상으로 고통받던 이들이 그녀의 무덤에서 기도하면서 치유되는 기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성녀 딤프나는 자연스럽게 신경 · 정신 관련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으며 겔 지역은 오늘날에도 정신질환자를 위한 독특한 가족 간호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딘프나(Dinfna) 또는 딤프네(Dymphe)로도 불리고 있으며 예전부터 5월 15일에 그녀의 축일을 기념하였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녀 딤프나의 축일을 5월 30일로 옮겨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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