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릴 때는 엄마 손을 잡고 성당에 다녔고 초등학교 때 첫영성체를 받았어요.
아들은 복사를 시킬 만큼 부모님이 굉장히 독실하셨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진 부모님이 데리고 가니 뭣도 모르고 성당을 다녔고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성당은 가지 않게 되었어요.
그때 이후로 아예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성당에 가지 않고 무척 바쁘게 살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산다는 것이 그렇게 녹록지가 않더라고요.
몇 년 전쯤 너무 힘든 일이 생겼는데
불행이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힘든 일이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터지니
스스로 어떻게 하질 못하겠더라고요.
어느 날 불현듯
성당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20여 년 만에 다시 성당에 가게 됩니다.
사실 기억나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가볼까 가볼까 가면 나아질까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긴 했지만 막상 가는 것이 쉽지 않았고
정말 가도 될까, 가면 뻘쭘하지 않을까, 나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등등... 몇 달 동안 고민만 했던 것 같습니다.
독립을 하면서 이사를 다닐 때마다 동네에 성당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사실 제가 제 의지로 다시 성당을 찾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고민만 몇 달을 하다가
어느 날 마음을 굳게 먹고 동네에 성당을 검색해서 찾아가게 됩니다.
뒤쪽에 슬쩍 앉아 있는데 미사가 시작되었어요.
제 탓이오 제 탓이오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는데 그냥 그렇게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울면서도 사실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
미사를 드리는데 고백의 기도는 대충은 알겠는데 (어릴 땐 내 탓이오 였는데 제 탓이오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대영광송은 정말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이건 새로 생긴 건가?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ㅋ)
그래도 사도신경이랑 주님의 기도를 어떻게 20년이 넘게 잊지 않고 있었는지
입으로 줄줄 외우고 있는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참 오랜만에 찾은 성당에서 잘 기억이 안나는 기도문이 많아 그저 앉았다 일어났다만 반복했지만
그리고 요즘도 그냥 가서 멍하니 앉아 있다 올 때가 많긴 하지만
그 후로 2년이 넘게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주일 미사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귀찮을 때도 많아요.
이번에만 빠질까 생각할 때도 많은데
20년을 넘게 안 갔던 사람인지라 한번 빠지면 또 영영 못 나가게 될까 싶어
귀찮더라도, 그냥 멍하니 앉아있더라도 꼬박꼬박 가고 있습니다.
2년이 지나니 그렇습니다.
제가 체험 이야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올리는 것도 다 너무 힘들 때 기도라도 해볼까 하면서 그때 찾아봤던 것들인데
사실 그때는 내가 이제라도 기도하면 나도 기적을 경험할 수 있나? 진짜 들어주시나? 이런 생각을 꽤나 했던 거 같아요.
그래 1년 기도해서 이루어진다면 1년 기도 하지 뭐
2년이 넘게 성당에 갔지만,
그리고 그때쯤 아무것도 모른 채 기도를 시작했고
그 후로 2년이 넘게 기도하고 있지만 그때 제가 간절히 바랐던 것들은 사실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냥 다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여전히 믿음이 강한 신자도 아니고요.
6개월만 성당에 나가면 믿음이 깊어질까
기도를 6개월만 하면 남들처럼 뭔가가 느껴질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제 믿음이 부족한 건지 2년이 지나도 사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얻은 것도, 이루어진 것도 없어요.
다만 마음의 평화는 얻은 것 같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똑같은 고통이 그때는 다 놓아버릴 만큼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그 똑같은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나만 힘든 건 아니지 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
성당에 나가고 기도를 시작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시간이 해결해준 건지는 사실 알 수 없어요.
다만 그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외면하던 성당을 갑자기 스스로 찾아가게 된 건지
정말로 누군가가 나를 불러준 건지. 하는 생각은 지금도 가끔 합니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저에게 없던 신앙심이 샘솟고 오! 주님! 하면서 뭔가를 느끼고 하는 건 아니에요.
여전히 강론 시간에는 딴생각을 하고
기도를 할 때도 그냥 중얼중얼 입으로만 읊을 때도 많고
오늘은 비도 오는데 성당 가지 말까, 오늘은 기도하지 말까 아무도 안 듣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는 날이
성당 가야지, 기도해야지 하는 날보다 훨씬 많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너무 힘들 땐 누군가를 붙들고 원망을 합니다.
또 제발 도와달라고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처음 혼자서 성당을 찾은 그날, 성당에 가면서
그래도 성당이라도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세례를 받아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랜 냉담자 분이 계시다면,
또 저처럼 혹시나 성당에 한번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 슬쩍 나가보세요.
개인적으로는 낯도 많이 가리고 어딘가 참여하거나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폐쇄형 인간인데.
성당에 가니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고 다들 기도만 하고,
저도 않아 있다가 그냥 오면 되니 부담이 없어서 좋았어요.
기도문이 기억이 안나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아무도 모르고
그냥 앉아만 있다가 와도 잠시나마 마음이 진정되기도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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