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카 (Frances)
같은이름 : 방지가, 로마나, 프랜시스, 프란체스카, 프란체스까, 프란치스까
3월 9일 성녀 프란치스카
신분 : 설립자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 1384-1440년
성녀 프란치스카는 이탈리아의 부유한 귀족인 부소(Busso)가문의 파올로(Paolo)와 자코벨라(Giacobella)의 딸로 이탈리아 로마의 중심부인 트라스테베레(Trastevere)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3세에 인근의 부유한 영주였던 폰치아노(Ponziano)의 라우렌시오(Laurentius)와 결혼한 그녀는 40여 년간 이상적인 결혼생활의 모범처럼 살았습니다. 프란치스카와 라우렌시오는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이중 둘은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습니다.
어릴 떄부터 금욕적인 기질이 강했던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표현하곤 하였는데 사회가 흑사병과 내란으로 인해 혼란스러울 때 자선활동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로마의 걸인들을 위하여 시누이인 반노차(Vannozza)와 함께 조직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하며 높은 성덕을 쌓아 나갑니다. 그녀는 성 알렉시우스(Alexius)의 환시를 보았고 그후 앓고 있던 중병에서 회복되었으며 아들인 요한 바티스타(Giovanni Battista)가 태어난 해인 1400년까지 산토 스피리투(Sancto Spiritu)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로마에 또 다시 흑사병과 기근이 닥쳤을 때 그녀는 자신의 보석까지 팔면서 이 재앙의 희생자들을 도왔습니다.
나폴리(Napoli)의 왕 라디슬라오(Ladislao)는 대립교황의 편이었고 1408년 로마를 점령하는데 이때 여자들은 남아 있었으나 남편 라우렌시오는 교황의 편에 서 있기에 피신해야만 했을 뿐만 아니라 폰치아니(Ponziani) 성이 약탈당하고 캄파니아(Campania)의 집도 불에 타버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흑사병으로 인해 1413년 아들 에반젤리스타(Evangelista)가 희생되자 자기 집을 아예 병원으로 개조하였으나 불행은 계속 이어졌고 그녀의 딸 아녜스(Agnes)마저 2년 후에는 사망하게 됩니다.
1414년경 편화가 찾아왔고 추방되었던 남편도 돌아왔으며 재산도 되찾게 되지만 남편의 건강은 아주 나빠져 있었습니다.
남편을 간호하면서 그녀는 자선활동을 계속하면서 세상 안에서 자선을 실천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로 결정합니다. 그녀는 처음에 마리아의 오블라티회(Oblate di S. Maria)로 알려졌으나 후에 토르 데 스페키의 오블라티회로 알려졌고 현재의 성 프란치스카 로마나의 오블라티회로 명칭이 바뀐 수녀원에 남편이 죽은 후 입회하게 되고 수녀원에 입회한 후 원장이 되어 엄격한 생활과 자선 사업에 전념하면서 수차례 환시를 보고 탈혼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치유의 기적을 행하고 예언의 은혜를 받았으며 대이교의 종말을 예언하였습니다.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1608년 5월 9일 시성되었으며 그녀가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데 밤낮으로 헌신하였고 로마의 밤거리를 다닐 때 수호천사가 등불로 길을 비춰주었으며 수호천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다는 전설에 근거하여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1925년에 그녀를 자동차 운전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성녀 프란치스카는 이탈리아 가정주부와 미망인의 모범으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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