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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펠릭스(Felix) 축일 5.(34-43) - 6월 17일, 6월 23일, 7월 2일, 7월 7일, 7월 10일, 7월 12일, 7월 15일, 7월 17일

 

펠릭스(Felix)

같은이름 : 펠리체

 

34. 6월 17일 성인 펠릭스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아테네(Athenae)

활동연도 : +연대미상

 

성 펠릭스와 성 이사우루스(Isaurus) 부제, 성 예레미야(Jeremias)와 성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 성 페레그리누스(Peregrinus)는 아테네 사람들로서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아폴로니아(Apollonia)에 있는 한 동굴에 박해를 피해 피신해 있다가 발각되어 모두 참수되었습니다.

 

35. 6월 23일 성인 펠릭스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수트리(Sutri)

활동연도 : +257년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사제인 성 펠릭스는 발레리아누스와 갈리에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습니다.

 

36. 7월 2일 성인 펠릭스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84년

 

성 펠릭스와 성 비탈리스(Vitalis), 성 아리스톤(Ariston), 성 우르바누스(Urbanus), 성 유스투스(Justus), 성 크레스켄티아누스(Crescentianus), 성 펠리키시무스(Felicissimus), 성 푸티키아누스(Futychianus)와 성녀 마르키아(Marcia)와 성녀 심포로사(Symphorosa)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시작한 박해 중에 순교하였습니다.

 

37. 7월 7일 성인 펠릭스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낭트(Nantes)

활동연도 : +582년

 

성 펠릭스는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의 귀족 출신으로 덕행과 웅변 그리고 학덕이 뛰어난 주교였습니다. 기혼자였던 그는 아내와 협의하여 36세 때에 자신은 성직자로, 아내는 수녀원으로 들어갔는데 그의 열성은 지나칠 정도로 강하였습니다. 그는 낭트 대성당을 지었습니다.

 

38. 7월 10일 성인 펠릭스 1

 

39. 7월 10일 성인 펠릭스 2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아프리카(Africa)

활동연도 : +연대미상

 

성 펠릭스와 성 나보르(Nabor), 성 마리누스(Marinus),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는 고대 순교자 목록에 이름이 기록된 아프리카의 순교자들이지만 그 외에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40. 7월 12일 성인 펠릭스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지역 : 밀라노(Milano)

활동연도 : +303년?

 

성 펠릭스와 성 나보르(Nabor) 순교자는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가 극찬하였고 이탈리아의 밀라노 교회가 특별히 공경하라고 명하기도 했지만 그에 비해 그들에 대한 기록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밀라노에 주둔하던 막시미아누스 헤르쿨레우스 부대의 무어인 군인이었던 그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인해 북이탈리아의 로디(Lodi)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습니다. 그 외의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성인들의 이름은 밀라노의 미사 경본에 나오며 북부 이탈리아 전역에서 공경하고 있습니다.

 

 

41. 7월 15일 성인 펠릭스 1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파비아(Pavia)

활동연도 : +연대미상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 파비아의 주교라는 사실 외에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스폴레토(Spoleto)의 주교인 성 펠릭스(5월 18일)와 그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합니다.

 

42. 7월 15일 성인 펠릭스 2

7월15일-펠릭스
성 펠릭스(7월 15일)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티비우카(Thibiuca)

활동연도 : 247?-303년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o)에서 멀지 않은 티비우카 교구의 주교였던 성 펠릭스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순교한 첫 순교자들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당시 로마제국의 동쪽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는 303년 2월 23일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포고령을 내렸으며 이는 6월 5일 아프리카에 있는 티비우카에서도 선포되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성경과 전례서를 그리스도인에게서 전부 제출받고 모든 성당을 파괴하라는 명령이었는데 성 펠릭스는 당시 카르타고에 있다가 교구로 돌아온 즉시 체포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을 시인하였으나 이를 제출하기를 거부하였고 이로 인해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게 됩니다.

 

성경을 제출하라는 카르타고 지방 총독의 명령을 완강히 거부한 성 펠릭스 주교는 그 앞에서 “거룩한 책들을 도둑에게 넘기기보다 차라리 태워버리는 것이 더 낫다. 나는 사람들에게 순종하기보다 하느님께 순종하겠다.”라고 당당히 말했고 황제의 명령에 불복종한 죄목으로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카르타고에서 동료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56년을 살았습니다. 저는 정결을 지켰고, 복음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신앙과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에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 영원히 계시는 주님께 바치는 제물로 제 목을 내어놓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때 성 필렉스와 함께 티비우카 교구의 사제인 성 아우닥토(Audactus)와 성 야누아리오(Januarius), 독서자인 성 셉티모(Septimus), 성 포르투나토(Fortunatus)도 카르타고로 끌려가 7월 15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그들의 축일을 이날 ‘천상 탄일’으로 기념하고 있으며 다섯 명의 순교자들을 실제로 이날 카르타고의 성 파우스토(Faustus) 대성당에서 기념하고 공경해 왔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같은 이름의 다른 성인과 혼동되면서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Puglia) 지방의 베노사(Venosa)에서 성 펠릭스가 순교했다는 주장이 나타났습니다. 그로 인해 옛 “로마 순교록”은 그의 축일을 다른 동료들과 함께 10월 24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성 펠릭스의 수난과 죽음을 그가 순교한 날인 7월 15일로 옮겨 기록하였고 자료 등의 미비로 인해 다른 네 동료 순교자에 대해서는 더는 목록에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43. 7월 17일 성인 펠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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