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John)
9. 3월 16일 복자 요한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비첸차(Vicenza)
활동연도 : +11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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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소르디(Joannes Sordi)는 이탈리아 크레모나(Cremona)의 소르디 가문 태생으로 16세 때에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으며 그로부터 8년 후에 성 빅토르(Victor) 수도원장이 되었고, 1155년에는 생 로랑 수도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산타 체칠리아의 추기경인 옥타비아누스가 빅토르 4세의 이름으로 성 베드로좌를 요구하는 것에 반대하고 교황 알렉산데르 3세를 지지하여 황제 프레데리쿠스 바르바로사로부터 추방당하게 됩니다.
만투아(Mantua) 지방에서 몇 년 동안이나 고적한 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는 엄격한 생활을 계속하였고 음식과 의복, 집안 가재도구까지 세심할 정도로 가난을 지켰습니다. 만투아의 주교, 그다음에는 비첸차의 주교로 봉직하였던 그는 대중적인 주교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반대자들로부터 살해당하였는데, 비첸차의 주민들은 모두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주민들은 그의 살해자를 색출하여 그 집에 불을 지르는 등의 소란을 피웠으나 그를 지원했던 이들이 살인자를 몰래 도망시켰다고 합니다.
10. 3월 19일 성인 요한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파나카(Panaca)
활동연도 : +6세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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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 단성설 논쟁이 한창일 때 시리아 사람인 성 요한(Joannes)이 고향을 떠나와서 이탈리아 스폴레토(Spoleto)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페자로(Pesaro) 교외에도 수도원을 세웠는데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다가 44세경에 고요히 눈을 감았습니다.
11. 3월 20일 복자 요한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파르마(Parma)
활동연도 : 1209-12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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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파르마 출신인 요한 부랄리(Joannes Buralli)는 작은 형제회의 제7대 총장으로 25세 때에 작은 형제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즉시 파리(Paris)로 가서 공부를 한 그는 사제로 서품된 후에는 볼로냐(Bologna), 나폴리(Napoli), 로마(Roma)에서 신학을 가르쳤는데 그의 설교는 매우 뛰어나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곤 하였습니다. 1247년 총장으로 선출된 그는 강인하고 배짱이 센 사람에 인내심도 뛰어났기에 수도회 내외의 어려운 문제들을 잘 풀어나갔습니다.
그는 부엌일하는 수사들을 자주 거들어 준 것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화해의 정이 깊었으며 침묵을 사랑했기에 쓸데없는 말을 삼갔습니다. 국왕 헨리 3세는 그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문밖으로 나와 보잘것없는 그를 껴안아 영접하였고 국왕 루이 9세는 그가 프랑스의 상스(Sens)를 찾았을 때 그의 기도와 축복을 청하기도 할 만큼 그는 많은 공경을 받았습니다. 또한 교황으로부터 동방 황제의 교황 대사로 임명받아 봉사하기도 하였던 그는 1257년에 총장직을 사임하고 후임자로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 7월 15일)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레치오(Greccio)의 은둔소로 은퇴한 그는 30여 년 동안 잊혀진 사람으로 살며 수덕생활에 전념하였습니다.
12. 3월 20일 성인 요한 1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네포무크(Nepomuk)
활동연도 : 1345?-13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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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은 1340~1350년 사이 체코 서부 보헤미아(Bohemia) 지방의 네포무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자 가문 이름인 벨플린(Velflin) 대신에 고향 이름을 따서 자신의 별명을 ‘네포무케누스’(Nepomucenus, 또는 네포무케노, 네포무크)로 지어 자신을 ‘네포무크 출신의 요한’으로 소개하였습니다. 프라하(Prague)의 카렐 대학교(Univerzita Karlova)에서 공부한 그는 1383년부터 1387년까지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 대학교로 교회법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한 후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보헤미아로 돌아와 1393년에 프라하 대교구 얀 젠슈타인(Jan z Jenstejna) 대주교의 총대리로 임명되었으며 자신이 맡은 중책을 성실히 수행하며 설교가와 고해 사제로도 활동하였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당시 보헤미아를 통치하던 국왕 벤체슬라우스 4세(Wenceslaus IV)는 그리스도 신자였으나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성격 또한 잔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왕비의 고해신부로도 활동했던 성 요한은 왕비를 의심한 국왕이 그에게 왕비의 고백 내용을 털어놓으라고 명령했을 때 “성스러운 고해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엄히 금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처럼 명하신 것을 순종치 못함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라고 대답하며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고 그로 인해 국왕의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클라드루비(Kladruby)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의 대수도원장 임명을 둘러싼 국왕과 프라하 대주교 간의 논쟁에도 휘말리게 되었는데 프라하 대주교와 함께 로마 교황을 지지하던 그는 국왕이 보낸 사람들에 의해 대수도원장 선거에 참석하러 갔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국왕이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수도원장을 임명하려 했을 때 성 요한은 이를 강력히 반대했을 뿐 아니라 성직에 대한 국왕의 개입 자체를 거부하였는데 왕비의 고백 내용을 밝히지 않아 이미 국왕의 미음을 샀던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게 됩니다. 성 요한은 끝까지 고해성사의 비밀을 누설하기를 거부하고 불에 달군 쇠로 옆구리를 지지는 등 참혹한 형벌을 받았고 몸을 구부려 발을 머리에 잡아매고 두 손을 뒤로 결박한 상태로 프라하의 카렐 다리(Charles Bridge) 위로 끌려가 블타바강(Vltava R., 독일어로는 몰다우강 Moldau R.) 아래로 산채로 던져져 순교하였습니다. 1393년 3월 20일의 일로 그가 블타바강으로 내던져진 후 블타바강 위에 별과 같은 광채가 다섯 개 떠올랐고, 어부들은 그곳에서 성 요한의 시신을 발견하여 성당에 모셨습니다. 그의 유해는 현재 프라하의 성 비토(Vitus) 대성당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1393년 4월 23일 로마로 간 프라하의 대교구장 얀 젠슈타인 대주교는 교황 보니파시오 9세(Bonifatius IX)에게 성 요한 네포무크의 순교 사실을 전하였고 벤체슬라우스 4세 왕을 고발하는 문헌을 제출하였는데 이미 성 요한은 순교자이자 성인으로서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음도 함께 전하였습니다. 교황 인노첸시오 13세(Innocentius XIII)에 의해 성 요한 네포무크는 1721년 시복되었고, 교황 베네딕토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1729년 3월 19일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그는 체코의 수호성인이자 고해성사의 비밀을 끝까지 수호한 순교자로서 ‘고해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으며 다리 위에서 물속에 던져져 순교했다는 이유로 ‘다리의 수호성인’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보통 교회 미술에서 사제복 위에 중백의를 입고 영대를 걸친 상태로 십자가를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고해성사의 비밀을 상징하듯 입을 가리는 모습 등으로 표현되며 다섯 개의 별을 성인의 후광과 함께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순교한 후 강 위로 떠 오른 광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체코를 비롯한 몇몇 나라와 옛 “로마 순교록”은 그의 축일을 5월 16일로 기념하고 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교회의 전통에 따라 네포무크의 성 요한 사제 순교자에 대해 그가 순교한 날인 3월 20일 목록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3. 3월 20일 성인 요한 2
신분 수도승, 순교자
활동지역 마르 사바(Mar Sabas)
활동연도 +796년
같은이름 : 얀, 존, 죤, 장, 쟝, 한스, 후한, 이반,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지오반니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예루살렘 인근의 마르 사바 대수도원에서 성 요한과 성 세르기우스(Sergius) 그리고 20여 명의 동료 수도승들이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아랍인들의 급습을 받아 순교하였으며 이보다 더 많은 수도승들이 부상을 입었고, 몇몇은 습격을 피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스테파노는 살아남은 이들 중의 한 명으로 이 사건의 전말과 순교자들의 영예로운 죽음에 대한 시를 지어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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