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Joseph)
16. 6월 3일 성인 요셉 무카사(Joseph Mukasa)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우간다(Uganda)
활동연도 : +1885년
같은이름 : 므까사, 므카사,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성 카롤루스 르왕가(Carolus Lwanga)와 성 요셉 무카사(Josephus Mukasa)와 동료 순교자들은 일명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라고 불리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 참으로 감동적인 순교사입니다.
1879년 중앙아프리카 내륙지방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처음으로 가톨릭 선교사를 파견하는데 라비제리(Lavigerie) 추기경이 중앙아프리카의 선교를 위해 1879년에 설립한 화이트 파더들(White Fathers)입니다.
우간다에서 처음에는 가톨릭교회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무테사(Mutesa) 추장의 도움으로 선교 활동과 신앙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했었는데 1860년경 우간다의 부두 카운티(Buddu County)에서 태어나 마울루궁구(Mawulugungu) 추장의 두 시종에게서 가톨릭 교리를 배운 성 카롤루스 르왕가는 1884년 부간다(Buganda)의 카바카(Kabaka) 왕궁의 시종장이자 열심한 신자였던 성 요셉 무카사의 조수로 들어가게 됩니다.
무테사 추장이 있을 때는 어느 정도 신앙생활의 가능했지만, 그의 후계자인 무왕가(Muwanga)는 자기 부족 가운데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뿌리 뽑으려고 하였지만 그들 중에는 성 요셉 무카사 같은 훌륭한 부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왕가 추장은 자기가 시작한 박해의 첫 희생자로 성 요셉 무카사를 선택해 참수형에 처합니다. 이때가 1885년 11월 15일로 그날 밤 성 카롤루스 르왕가는 세례성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성 요셉 무카사의 지위를 승계한 그는 사제들과 연락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왕가 추장의 잘못된 요구로부터 시종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자 예비신자 4명에게 몰래 세례를 주었는데 이때 세례를 받은 이들 중에는 13살의 소년 성 키지토(Kizito)도 있었습니다.
1886년 5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다시 시작되어 이듬해까지 계속되었는데 무왕가 추장은 가톨릭 신자는 물론 성공회 신자들을 모두 색출해 잡아들였습니다. 성 카롤루스 르왕가와 신자가 된 시종들은 모두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한 후에 체포되었으며 그렇게 체포된 신자들은 나무공고(Namugongo)라 불리는 처형지까지 끌려가면서 온갖 시련을 겪게 됩니다.
처형장에 도착한 그들은 1886년 주님 승천 대축일인 6월 3일에 옷이 벗겨진 채 꽁꽁 묶였고, 사형 집행자들은 밤이 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괴롭히다가 천천히 불에 태워 죽이는 잔인한 방법으로 모두 살해하였습니다. 그들보다 조금 앞서 5월 하순에 순교한 이들 중에 마티아 칼렘바 무룸바(Mattias Kalemba Murumba)로도 불리는 성 마티아 무룸바(Matthias Murumba)가 있었는데 그는 처음에는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으나 결국은 리빈하크(Livinhac)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또 다른 동료 순교자로 키고와의 추장인 성 안드레아 카그와(Andreas Kagwa)가 있었는데, 그는 아내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주위의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받도록 인도하였습니다.
이렇게 성 요셉 무카사 이후 1887년 1월 말까지 추장의 부당한 성적 요구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지키고자 노력한 많은 신자가 잔인한 고문을 받고 화형이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란 말처럼, 그들의 순교 이후 즉시 500명 이상이 세례를 받고 3천 명 이상의 예비신자가 쇄도하여 오늘날의 우간다 교회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고 성 카롤루스 르왕가와 성 마티아 무룸바를 포함해 모두 22명의 우간다 순교자들은 1920년 6월 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성대한 예식으로 시복되었으며 1964년 10월 18일 로마에서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우간다의 순교자들’로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성 카롤루스 르왕가는 1934년 6월 22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아프리카의 젊은이들과 가톨릭 운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17. 7월 20일 성인 요셉 바르사바 (Joseph Barsabas)
신분 :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증거자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바르사바스, 바르사빠, 요세푸스, 요제프, 유스도, 유스토, 유스투스,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성 요셉 바르사바(Josephus Barsabas)는 예수님을 잡아 넘긴 유다(Judas)의 자리를 대신하여 성 마티아(Matthias, 5월 14일)와 경합을 벌였던 사람으로(사도 1,23). 그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다녔고, 예수의 부활의 증인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72제자 중의 한 명인 듯하며, 제자들이 흩어진 다음부터 그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였으나 큰 탈 없이 지내다가 끝내는 독살 되었다고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해 전해집니다.
유스투스(Justus, 또는 유스도)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18. 4월 30일 성인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 (Joseph Benedict Cottolengo)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 1786 - 1842년
같은이름 : 베네데토,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분도,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셰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토뜰렌고, 코토렝고, 코틀렝고, 호세
이탈리아 토리노(Torino)의 브라(Bra)에서 출생한 성 요셉 베네딕투스 코톨렌고(Josephus Benedictus Cottolengo, 또는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는 사제로 서품된 후 본당 사목을 담당하였는데 토리노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료시설이 없었습니다.
그는 본당 내의 어느 부인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큰 충격을 받아 가난한 병자들을 위한 '하느님 섭리의 작은 집'을 개원하게 되는데 이것이 점점 확대되자 자원 봉사자들을 모집하여 단체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 빈첸시오 수도회와 빈첸시오 수녀회의 모태가 되었는데 1831년 콜레라가 창궐하게 되었을 때 병원도 문을 닫게 되자 그는 즉시 도시 외곽인 발도코(Valdocco)로 자리를 옮겨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계속합니다.
병원은 연일 만원이었고, 그래서 조금씩 확장되었는데 그는 노인, 농아, 맹인, 불구자, 정신 이상자 및 거리의 여성에게도 보호의 손길을 뻗쳤고 결국 그의 피콜라 카사(Piccola Casa)는 큰 병원 조직이 됩니다.
그는 이런 불행한 사람들을 사목하기 위하여 연민회, 착한 목자회, 로사리오의 은수자회 그리고 삼위일체의 사제회를 설립하며 장티푸스로 인하여 극도로 쇠약해진 그는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이탈리아의 키에리(Chieri)에서 운명합니다.
1917년 교황 베네딕투스 15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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