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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오딜로(Odilo) 축일 - 1월 1일

 

오딜로(Odilo)

 

1월 1일 성인 오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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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딜로(1월 1일)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클뤼니(Cluny)

활동연도 : 961/962-1049년

 

귀족인 메르쾨르(Mercoeur) 가문의 막내로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Auvergne)에서 태어난 성 오딜로는 브리우드(Brioude)의 성 율리아누스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그 후 991년경 클뤼니 수도원에 입회하였습니다. 993년 제4대 수도원 원장인 성 마욜루스(Majolus, 5월 11일)의 비서로 일하던 그는 994년 5월 11일 제5대 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인자하고 자비로운 성품을 지녔던 성 오딜로는 뛰어난 조직력과 지도력, 통솔력도 동시에 발휘하여 클뤼니 공동체의 수를 크게 확장시키면서 동시에 이를 하나로 통합시켜 클뤼니 연합회를 체계적으로 정립시켰습니다.

 

성 오딜로는 1030-1031년에 자신의 수도원과 소속 모든 회원들이 함께 기념할 축일로 오늘날의 위령의 날인 11월 2일을 '모든 성인의 날'로 택하였는데 후에 이 기념일은 교회 전례력에 정식으로 수록되었습니다. 1041년에 수도원 내에서 수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일체의 싸움을 중지하도록 하는 '신의 휴전'(Treuga Dei)을 확대시켜 적용하였으며 성당에 피신처를 구한 사람을 체포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기도 한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언제나 관심을 기울였고 1033년에 대기근이 일어나자 수도원 소유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을 통하여 내외적으로 클뤼니 수도원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에 몰두하였던 성 오딜로는 구체적으로 새롭고 웅장한 수도원 건물들을 짓는 데 헌신하였고 에스파냐로 클뤼니 수도회가 진출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어려서부터 깊었던 그는 육화에 있어서 동정녀의 역할과 성모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이 지닌 특권을 역설하기도 하였습니다. 1049년 1월 1일 수비니(Souvigny)의 수도원을 방문하였다가 사망한 그는 그곳에 안치되었으며 1063년에 시성되었는데 성인의 전기를 저술한 성 베드로 다미아누스(Petrus Damianus, 2월 21일)의 역할로 인해 빠르게 시성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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