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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세라핌(Seraphim) 축일 - 1월 2일

 

세라핌(Seraphim)

 

1월 2일 성인 세라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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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라핌(1월 2일)

신분 : 수도승, 은수자, 신비가

활동지역 : 사로프(Sarov)

활동연도 : 1759-1833년

같은이름 : 쎄라핌

 

러시아 쿠르스크(Kursk)의 동방교회 가문에서 성 세라핌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으로 1759년 7월 19일 프로코르 이시도레빅 모쉬닌(Prokhor Isidorevic Moshni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인 이시도레빅 모쉬닌은 건축업자였는데 일찍 사망하였는데 그러자 남편이 완성하지 못한 교회 건축을 그의 어머니가 도맡아 하게 됩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 기적적인 사건을 체험하게 되는데 상인이 된 형을 도우면서 마음속으로 수도생활로의 부르심을 깨달아 동료들과 함께 1776년 키예프(Kiev) 순례를 떠나게 됩니다. 그는 수도생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어 19세였던 1778년 19세의 나 사로프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1786년에 서원을 하였으며 히브리어로 ‘열정’이라는 뜻을 가진 세라핌이라는 수도명을 받게 되었고 1793년에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사로프에서 몇 마일 떨어진 숲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위하여 이듬해 그는 수도원을 떠났는데, 그가 있던 수도원을 비롯하여 많은 수도원으로부터 원장직을 의뢰받았지만 모두 거절하였습니다. 1804년에는 세 명의 강도들에게 심한 매를 맞게 되어 수도원에 옮겨졌지만 기적적으로 성모 마리아에 의해 치유되어 숲으로 다시 돌아왔고 그 뒤로는 절대적인 침묵과 고요 속에서 전 세계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며 생활하였습니다. 당시는 나폴레옹의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질병과 수도원장직을 수행해야 할 의무 때문에 1810년 그는 사로프의 수도원으로 되돌아왔으나 수년 동안 격리된 작은 방에서 완전한 은둔생활을 하였고 1815년에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하게 되는데 그 후로부터는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자들에게 영적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1825년, 그가 66세 되던 해에는 숲 속의 은둔소로 되돌아가 영적 사부 혹은 영성 지도자로서 특히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1832년부터 그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짐을 깨닫고 영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자신의 묘 자리를 미리 정해 놓은 그는 자신의 방 입구에 놓인 관 앞에서 묵상을 하다가 종종 졸도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수많은 기적적인 행적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는 수도원에 있던 그의 방에서 이듬해 1월 2일 성화 ‘우리의 부드러운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며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그의 손에서 떨어진 촛불에 그의 옷은 불타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가 사망한 후 성 세라핌의 무덤을 참배하던 사람들에게 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며 러시아 정교회는 1903년 1월 29일 그를 성인으로 선포하는 교령을 반포하였고 그 해 7월 19일 시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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