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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알렉산데르(Alexander) 축일 2.(10-16) - 3월 18일, 3월 24일, 3월 27일, 3월 28일, 4월 24일, 5월 3일, 5월 20일

 

알렉산데르(Alexander)

같은이름 :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레산드로,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10. 3월 18일 성인 알렉산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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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렉산데르(3월 18일)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 +251년

 

성 알렉산데르는 소아시아 카파도키아(Cappadocia) 태생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하였는데, 그의 동료 학생 가운데 오리게네스(Origenes)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고향인 카파도키아의 첫 번째 주교로 임명되었지만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때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천신만고 끝에 석방된 후에는 예루살렘 순례 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교계 사상 처음으로 212년에 부주교로 임명되었는데 성 나르키수스(Narcissus, 10월 29일) 주교가 이미 백 세를 훨씬 넘겨 자신을 도울 주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망명 중이었던 오리게네스에게 피신처를 제공한 성 알렉산데르는 오리게네스의 서품식에도 참석하였는데 이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의 데메트리우스(Demetrius, 10월 9일) 주교로부터 견책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서관과 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던 그는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옥에 갇혔다가 그곳에서 옥사하였습니다.

 

11. 3월 24일 성인 알렉산데르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카이사레아(Caesarea)

활동연도 :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성 티몰라우스(Timolaus)를 비롯한 8명의 일행이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는데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성 티몰라우스 외에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성 알렉산데르와 역시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성 로물루스(Romulus), 성 아가피우스(Agapius), 성 파우시스(Pausis)의 이름을 전해주었습니다.

 

12. 3월 27일 성인 알렉산데르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연도 : +260년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군인이었던 성 알렉산데르는 막시미아누스 헤르쿨레우스 황제 때 판노니아(Pannonia, 오늘날의 헝가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13. 3월 28일 성인 알렉산데르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60년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성 알렉산데르와 성 말코(Malchus), 성 프리스코(Priscus)는 공중 경기가 열리는 중에 야생 짐승에게 던져져 순교하였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의 월계관을 쓴 거룩한 도시 카이사레아 외곽의 어느 농장에서 살고 있었던 그들은 박해가 절정에 달했을 때 숨어 지내고 있는 자신들의 비겁함에 대해 자책하며 서로를 꾸짖었습니다. 그들은 억누를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우리를 위해 희생함으로써 천국의 문을 열어주신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함으로써 영광스러운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고 서로를 격려하며 카이사레아로 돌아왔고 재판관 앞으로 나아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히 고백하면서 경건한 이들이 흘린 피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습니다. 그들의 용기에 많은 이들이 감동하였지만 재판관은 이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들을 고문하고 야생 짐승들이 있는 경기장 안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이렇게 세 명의 순교자들이 탄생하였습니다.

 

14. 4월 24일 성인 알렉산데르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리옹(Lyon)

활동연도 : +178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치하의 그리스도교 박해는 특히 프랑스 리옹에서 맹위를 떨쳤는데 수많은 희생자들 가운데 성 알렉산데르와 성 에피포디우스(Epipodius, 4월 22일), 이 두 젊은 사람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 사이였던 그들은 성 포티누스(Photinus, 6월 2일)와 그 동료들이 순교한 후에 리옹을 떠나 어느 과부 집에 은신하였지만 뜻하지 않게도 그들은 체포되었습니다. 성 에피포디우스는 이때 신발을 벗어두고 도망치려 하였지만 무위로 끝나고 말았는데 이 신발은 후일 성인의 귀중한 유물이 되었습니다.

 

그 지방의 통치자 앞에 그들이 끌려 나오자 군중들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언하였고 수많은 고문에도 태연했는데 이에 관리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여 두 사람을 갈라놓은 후 겉으로 약해 보이는 성 에피포디우스에게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면서 배교를 강요하였고 그럼에도 그가 요지부동이자 관리는 화가 치밀어 입에 재갈을 물리고 다시 갖은 고문을 다하였지만 그의 신앙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군중들은 성 에피포디우스의 신앙을 꺾을 수 없게 되자 그를 죽이라고 소리를 질렀고 관리는 그를 참수형에 처하도록 명하였습니다.

 

그의 친구인 성 알렉산데르 역시 똑같은 형벌을 받고 장렬히 순교하였는데 그는 십자가형을 언도받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너무나 지친 몸을 이기지 못해 형장으로 가는 도중에 운명하였습니다.

 

15. 5월 3일 성인 알렉산데르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 +313년

 

성녀 안토니나(Antonina)는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지방총독 페스투스에 의해 매춘굴로 보내지는 판결을 받았는데 그리스도 신자였던 군인 성 알렉산데르에 의해 그녀는 비밀리에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성녀 안토니아에게 외투를 갈아입혀 그녀를 탈출시킨 성 알렉산데르는 그녀의 자리에 남아 있었는데 얼마 후 성녀 안토니나 역시 발견되어 성 알렉산데르와 함께 두 손이 잘리는 고문을 받고 불속에 던져져 콘스탄티노플에서 순교하였습니다.

 

16. 5월 20일 성인 알렉산데르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84년

 

성 탈렐레우스(Thalelaeus)는 레바논(Lebanon)에서 로마군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소아시아 지방 실리시아(Cilicia)의 아나자르부스(Anazarbus)에서 살던 의사였는데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술을 베풀었던 그는 '자비로운 사람'이란 칭호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메리아누스(Numerian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극심해지자 몸을 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아무도 모르게 숨었지만 결국 체포되어 실리시아의 아이게아(Aegea)로 압송되었고 그곳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성 알렉산데르와 성 아스테리우스(Asterius)는 로마군 사형집행인이거나 구경꾼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성 탈렐레우스의 죽음에 대해 동정을 표했다는 이유로 이때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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