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Anthony)
9. 3월 9일 성인 안토니오
신분 : 수도승, 은수자
활동지역 : 프로와드몽(Froidemont)
활동연도 : +10세기
같은이름 : 안소니,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토니우스
성 안토니오는 뤽세이유(Luxeuil)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고, 프랑스 동부 프랑슈콩테(Franche-Comte)의 프로와드몽에서 은수자가 되어 높은 성덕을 쌓았습니다.
10. 4월 14일 성인 안토니오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리투아니아(Lithuania)
활동연도 : +1342년
같은이름 : 안소니,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토니우스
성 안토니오, 성 에우스타키우스(Eustachius), 성 요한(Joannes)은 모두 젊은 관리들로 당시 리투아니아를 통치하던 알기르다스(Algirdas) 대공의 휘하에 있었습니다. 고향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교도들이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그리스도교를 알게 되어 세례를 받았는데 새로 받아들인 그리스도교 신앙에 너무나 충실하여 교회의 단식일에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버티다가 이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투옥되었습니다.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은 사형선고를 받아 빌나(Vilna, 현재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성 요한은 그들 중 가장 연장자로 1342년 4월 24일에 교수형을 받았고, 그의 동생이었던 성 안토니우스는 그해 6월 14일에, 성 에우스타키우스는 12월 13일에 각각 처형되었습니다. 빌나의 수호성인인 그들은 리투아니아 사람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로부터도 공경을 받고 있으며 키에프(kiev)의 총대주교 알렉시우스(Alexius)에 의해 4월 14일로 그들의 축일이 정해졌습니다.
11. 4월 27일 복자 안토니오
신분 : 은수자
활동지역 : 시에나(Siena)
활동연도 : +1311년
같은이름 : 안소니,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토니우스, 파트리치
안토니오 데 파트리치(Antonius de Patrizi)는 이탈리아의 시에나에서 태어났으며 몬티치아노(Monticiano)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에 입회하여 후에 수도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또 다른 거룩한 은수자인 카메라타의 베드로(Petrus)와 서로 격려하면서 높은 성덕을 쌓았으며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은수자 성 바오로(Paulus)와 안토니오의 만남에 견줄 수 있다고 합니다. 1804년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습니다.
12. 6월 13일 성인 안토니오
신분 : 신부, 교회학자, 설교가
활동지역 : 파도바(Padova)
활동연도 : 1195-1231
같은이름 : 안소니,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토니우스
1195년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성 안토니오는 는 페르난두스(Fernand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포르투갈 국왕 알폰소 2세의 궁중 기사였습니다. 신앙심 깊은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성 안토니오는 리스본 주교좌성당 부속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집 근처에 있었던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에 15살 되는 해에 입회하였으며 1212년에는 자신을 찾아오는 친척들과 친구들을 피하고자 다시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참사 수도회로 옮겨 공부와 기도 생활에 8년 동안 전념하였으며 1219년에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북아프리카의 모로코(Morocco)에서 순교한 성 베라르두스(Berardus)를 포함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첫 순교자들의 유해가 1220년 1월 16일 코임브라의 성 십자가 성당으로 옮겨져 왔을 때 그는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그해에 바로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으며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아프리카 선교를 자원하였습니다. 그의 소망대로 그는 무어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로코로 파견되었으나, 도착 직후 병을 심하게 앓게 되고 이로 인해 다시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돌아오던 뱃길에서 심한 폭풍우를 만난 그는 시칠리아섬에 잠시 머무르게 되고 그곳에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고 아시시(Assisi)의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에서 1221년 개최된 작은 형제회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후 코임브라로 돌아온 성 안토니우스는 관구장 신부 곁에서 조용히 은둔하며 고행 생활을 하였고 그러다가 영적 수련에 더 몰두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청하여 포를리(Forli) 근처에 있는 몬테파올로(Montepaolo) 운둔소로 가게 됩니다.
어느 날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기 위해 코임브라 관구장인 그란치아노(Granziano) 신부와 함께 포를리로 갔는데, 미사에서 강론할 마땅한 사람이 없자 이를 성 안토니오가 맡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그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차원 높은 교리 지식을 바탕으로 열정적인 강론을 하였고 이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설교가로서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카타리파(Cathari) 이단이 성행하던 북부 이탈리아 지방과 알비파(Albigenses) 이단이 성행하던 남부 프랑스에서 설교하라는 명을 받아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의 뛰어난 설교와 화술은 불같았으며 설득력이 있었고 모여든 군중들을 매료시켜 그가 가는 곳마다 군중이 구름처럼 운집하였으며 그는 많은 이단자를 회개시켰기에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작은 형제회의 첫 번째 신학 교수로 임명되기도 하였지만 설교 직분에 헌신하기 위해 공식적인 직책에서 면제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고해성사를 주는 신부로서의 그의 성공은 매우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남부에서 활발히 활동하다가 1226년 10월 3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가 선종하자 이탈리아로 돌아왔고 이듬해에 에밀리아(Emilia) 관구의 관구장 대리로 선출되었지만 1230년 설교에 더 전념하기 위해 이를 사임한 뒤 파도바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성 안토니오는 파도바에 정착하여 그곳 사람 모두를 완전히 개종시키는 빛나는 업적을 세웠으며 사방에서 그의 강론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기도 하였습니다.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는 채무자들을 도왔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는 일과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힘썼으며 이단에 빠진 이들을 개종시키는 등 열정적으로 활동하였지만 그는 과도한 활동과 설교로 인해 기력이 약해지게 됩니다. 1231년에는 잠시 요양할 목적으로 파도바 근처의 캄포 산 피에로(Campo San Piero)로 가서 은둔생활을 시작하였으나 병이 심해져 파도바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파도바로 돌아가던 중 성 안토니오는 베로나(Verona)의 아르첼라(Arcella)에 있는 클라라 수녀회에서 6월 13일, 그의 나이 불과 36세에 선종하였습니다. 그의 유해는 현재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당에 모셔져 있으며 이례적으로 그는 선종한 바로 다음 해인 123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으며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1946년 교회학자로 선언되었고, ‘복음적 박사’라는 호칭도 부여받았습니다.
성 안토니오의 설교 능력과 수많은 기적 이야기는 가톨릭교회의 대표적 전설 중 하나가 되었고, 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가 나오는 것은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를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 ‘신약 성경의 방주’라고 칭했고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도 불렀습니다. 자기 앞으로 몰려든 물고기 떼에게 리미니(Rimini)에서 설교하면서 물고기가 이단자들보다 더 자신의 설교를 잘 경청한다고 했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믿지 않는 이단자의 요구에 따라 3일간 굶긴 노새를 풀어주자 사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노새의 기적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볼로냐(Bologna)에서 성 안토니오가 수도자들을 가르칠 때 사용하던 시편집을 한 수련자가 허락 없이 가져간 일이 있었는데 그가 하루빨리 시편집이 돌아오기를 기도했는데 자신의 죄를 뉘우친 그 수련자가 시편집을 돌려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17세기부터는 안토니오 성인에게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기도하면 곧바로 찾는다는 전설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19세기에는 가난한 이들의 수호자로서 일생을 그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 안토니오의 이름을 따서 ‘성 안토니우스의 빵’이라는 구호단체가 설립되어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오늘날까지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 미술에서 기적 이야기 외에도 주로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는 책을 들고 있거나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을 들고 있거나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그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은 한 방문자가 본 장면에서 유래하며 그가 깊은 묵상에 빠졌을 때 잠시 아기 예수님이 성인의 품에 안긴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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