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Anthony)
5. 2월 1일 복자 안토니오
신분 : 순례자
활동연도 : 1237-1267년
같은이름 :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토니우스, 안소니,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이탈리아 파도바(Padova)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안토니우스 만조니(Antonius Manzoni)는 어려서 부친을 잃고 물려받은 막대하 유산을 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희사하였기에 주민들과 친척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모든 재산을 나눠준 후 이제 자신이 가난하게 된 안토니오는 순례자의 복장을 하고 파도바를 떠나 방황하다가 볼로냐(Bologna) 교외 바자노까지 오게 되는데 이곳에서 병든 노사제를 발견한 그는 3년 동안 보살펴 드렸는데 안토니오가 문전걸식으로 얻어오는 음식으로 연명하였던 그들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다른 이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스스로 규율을 정하여 지키면서 생활한 그는 꺼칠꺼칠한 옷을 입고 맨땅에서 돌베개를 이용하여 잠을 잤습니다.
그 로 로마(Roma)와 로레토(Loreto),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와 쾰른(Koln), 예루살렘(Jerusalem)까지 순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성벽 외곽에 있는 폐허가 된 어느 성당에서 지내던 그는 그러던 중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종하였습니다.
6. 2월 6일 성인 안토니오
신분 : 복사, 3회원, 순교자
활동지역 : 일본(Japan)
활동연도 : 1584-1597년
같은이름 : 다이난, 데이난,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토니우스, 안소니,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1584년 일본의 나가사키(長崎, Nagasaki)에서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성 안토니오는 성 안토니우스 다이난 또는 데이난(Antonius Dainan/Deynan)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복사로 활동하였고 나가사키의 예수회 회원과 오사카(Osaka, 大阪)의 작은 형제회 회원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후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었습니다. 1587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선교사 추방령을 내려 많은 선교사가 추방되고 포교 행위가 금지되었던 당시 일본 교회는 신앙 자체가 금지되지는 않았었는데 15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에스파냐를 비롯한 서양 세력과 일본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선교 활동을 조심스럽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토(京都, Kyoto) 지방인 미야코(宮古, Miyako)에서 1596년 무렵 작은 형제회 회원들이 성당과 수도원과 병원을 건립하는 등의 공공연한 전교 활동을 전개하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고 일본 지배층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는데 그런 데다가 그해 여름 에스파냐 선박 산 펠리페(San Felipe)호가 마닐라를 떠나 멕시코로 가던 중 태풍에 밀려 일본 해안으로 떠밀려오면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일본 관리들과의 대화 중 선원들이 에스파냐의 왕권과 정복욕을 자랑하며 일본을 무시하는 말을 한 데다가 선교사들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노를 자아내게 됩니다.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6년 12월에 게이한(京阪, 교토와 오사카) 지방에서 활동하던 작은 형제회 회원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으며 성 안토니오 역시 미야코에서 체포됩니다. 이 박해로 인해 게이한 지방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모두 24명에 달했으며 이들은 작은 형제회의 신부와 수사 6명과 작은 형제회의 일본인 재속 3 회원 15명, 예수회의 수사 3명 등이었습니다. 미야코 감옥에 갇혔던 성 안토니우스와 동료들은 1597년 1월 3일, 모두 광장으로 끌려 나와 사형선고를 받았고 처형장인 나가사키까지 혹한의 추위 속에서 걸어가게 됩니다. 성 안토니오는 13살의 어린 나이로 사형선고를 면할 수도 있었으나 단호하게 이를 거부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이 처형을 위해 나가사키까지 가는 동안 오르간티노(Gnecchi-Soldo Organtino) 신부에 의해 예수회 회원들을 돌보도록 파견된 성 베드로 스케지로(Petrus Sukejiro)와 작은 형제회 회원들을 돌보던 성 프란치스코 키치(Franciscus Kichi)가 그리스도교 신자임이 드러나 체포되었고, 순교의 길에 기꺼이 동참하여 신앙을 지키고자 한 순교자는 모두 26명으로 늘어났습니다. 2월 5일에 나가사키 근교 우라카미(浦上, Urakami)라는 교우촌에 도착하여 예수회 신부 2명을 만나 고해성사를 받은 그들은 같은 날 십자가형을 받고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던 니시자카(西坂, Nishizaka) 언덕으로 끌려가 창에 찔려 순교하였습니다.
성 안토니오와 25명의 동료는 나가사키의 골고다 언덕으로 불리는 니시자카 언덕에서 예수님처럼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할 수 있어서 기뻐하였으며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이 되었으며 이후 그들이 순교한 언덕은 ‘순교자의 언덕’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1627년 9월 성 안토니오와 25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복자품에 올랐고,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1862년 6월 8일 ‘26위의 일본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바오로 미키와 25명의 동료가 순교한 2월 5일 목록에서 그들의 순교 사실을 기록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1969년의 전례력 개정과 함께 보편 전례력 안에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성녀 아가타(Agatha, 2월 5일) 동정 순교자와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2월 6일로 날짜를 옮겨 기념하고 있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또한 26위의 일본 성인인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에 대해 2월 6일 목록에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7. 2월 7일 복자 안토니오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스트론코네(Stroncone)
활동연도 : 1381-1461년
안토니우스 비치(Antonius Vici, 또는 안토니오 비치)는 프란치스코 재속 3회원이던 루이지와 이사벨라 비치의 아들로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 스트론코네에서 태어났으며 순탄하게 프란치스코회 평수사로서 수도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의 나이는 이때 그의 나이는 12세였습니다.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던 소년은 자발적으로 기도하고 스스로 엄격한 생활을 선택하는 작은 수도자였습니다. 그는 26세 때에는 피에졸레(Fiesole)의 수련장인 피렌체(Firenze)의 토마스 벨라치(Thomas Bellacci)를 도와줄 만큼 성장하였으며 이후 이 자리에 임명되었습니다.
소위 프란치스코회 내부의 ‘영적인 형제’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었던 그는 사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0여 년 동안이나 선교활동에 가담하였으며 후일 카르체리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30여 년간 극도의 고행을 하여 겸손의 화신이라 불릴 만큼 높은 덕을 쌓았습니다. 80세의 일기로 1461년 2월 7일 역사적인 수도원인 아시시(Assisi)의 산다미아노(San Damiano)에서 선종한 그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1687년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8. 2월 14일 성인 안토니오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연대미상
성 안토니오와 성 바수스(Bassus), 그리고 성 프로톨리쿠스(Protolicus)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으며 일부 고대 기록에는 이들과 함께 순교한 9명의 동료를 추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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