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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안드레아(Andrew) 축일 3.(13-18) - 8월 29일, 9월 23일, 10월 20일, 11월 28일, 11월 30일

 

안드레아 (Andrew)

같은이름 :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13. 8월 29일 성인 안드레아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연도 : +735년

 

성 안드레아 신부와 성 히파티우스(Hypatius) 주교는 리디아(Lydia) 태생으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이사우리아 왕조의 레오 황제 때 성상 공경을 옹호한 이유로 순교하였습니다.

 

14. 9월 23일 성인 안드레아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900년

 

성 안드레아, 성 베드로(Petrus)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성 요한(Joannes)은 당시 시칠리아(Sicilia) 섬을 점령 중이던 사라센들에 의해 아프리카로 추방되었고 그곳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잔혹한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15. 10월 20일 성인 안드레아

신분 : 수도승, 순교자

활동지역 : 크레타(Creta)

활동연도 : +766년

 

성 안드레아는 콘스탄티누스 5세 황제가 성상 파괴 정책을 강행할 때 이에 대항하기 위해 적지인 콘스탄티노플로 들어갔던 인물입니다. 그는 황제의 임석 하에 이루어지는 정통파 그리스도인들의 박해 현장에서 용감하게 항의하였고 황제 바로 앞에까지 질질 끌려가서 황제는 우상숭배자라고 욕하며 황제의 그릇됨을 질책하였습니다.

 

경호원들에게 이끌려 투옥되면서 그는 “신앙을 거스르는 당신은 곧 무력하게 될 것이다.”라고 외쳤고 다음 날에도 그가 계속하여 황제를 비방하자 황제는 그를 시범적으로 길거리로 끌어내어 죽이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를 형리들은 오물구덩이 속으로 던졌으나 그가 다시 기어 나오자 하는 수 없이 불태워 죽였고 나중에 교회는 그의 순교지에 대성당을 세웠습니다.

 

16. 11월 28일 성인 안드레아

신분 : 수도승, 순교자

활동연도 : +765년

 

성 스테파노(Stephanus)는 비잔틴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5세의 성상 파괴 박해가 거세게 휘몰아칠 때 성화 공경의 옹호자로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최초 지도자였습니다. 원래 칼케돈(Chalcedon) 근방 성 아욱센티우스 산(Mount Saint Auxentius) 산의 은수자였던 그는 성화 공경과 연루되어 마르마라해(Sea of Marmara)의 프로콘네수스(Proconnesus) 섬으로 3년 간 추방되었는데 석방되자마자 곧장 황제 앞으로 달려가서 질문을 던집니다.

 

황제상이 새겨진 동전을 하나 든 그는 “만일 여기에 박힌 황제상이 수모를 당한다면 참지 못하겠지요? 그런데 하물며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 모친이신 마리아의 상을 불 속에 처넣다니요?” 라고 말하고 동전을 마루에 내팽개쳤고 이를 본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진노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게 하였는데, 이렇게 갇힌 수도자의 숫자는 300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황제는 그를 사형에 처하라는 명을 내리지 못하였으나 그의 부하들이 그를 살해하였는데 이때 성 안드레아와 성 바실리우스(Basilius), 성 베드로(Petrus) 등의 수도자들이 함께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였습니다.

 

 

17. 11월 30일 성인 안드레아 1

11월30일-성-안드레아
성 안드레아(11월 30일)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

 

성 안드레아는 요한의 아들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의 동생으로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갈릴래아 카파르나움 출신이고(1,21-31), 요한복음에 따르면 갈릴래아 벳사이다 출신으로(요한 1,44) 갈릴래아 호수에서 형과 함께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카파르나움과 벳사이다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는 이웃 마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이었는데 공관복음에 따르면, 갈릴래아 호숫가를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성 베드로와 성 안드레아 형제가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라며 그들을 첫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물을 버리고 바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요한복음은 성 안드레아를 성 요한 세례자(Joannes Baptistae, 6월 24일)의 제자 중 한 명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두 제자와 함께 있던 성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말했고, 그의 말을 듣고 두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와서 보아라.” 하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해 그분과 함께 묵은 후 성 안드레아는 집으로 돌아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며 예수님께 시몬을 데려갔고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앞으로 그가 케파, 즉 베드로라고 불릴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35-42). 초대교회는 이에 근거해서 ‘맨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성 안드레아를 ‘프로토클레토스’(Protokletos)라고 불렀습니다. 이렇듯 성 안드레아는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메시아, 바로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이며 주님의 복음을 가장 먼저 전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성 안드레아의 이름은 ‘남자다운’, ‘용감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복음서에서 많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실 때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예수님께 오병이어를 가진 아이를 인도해 갔고(요한 6,1-15) 축제 때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온 이들 중 이방인인 그리스 사람 몇몇이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청하자 예수님께 성 필립보와 함께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요한 12,20-22). 이처럼 복음에서 성 안드레아는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예수님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였으며 그 외에도 예수님께 올리브 산에서 종말에 관해 물어본 네 명의 제자(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아) 중 한 명으로 등장합니다(마르 13,3-4).

 

 

성 안드레아는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그리스 지방과 흑해 서부 스키티아(Scythia) 지방으로 가서 활발히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고 다른 전승에 의하면 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 불가리아 지방까지 가서 선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해당 내용은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성 스타키스(Stachis, 10월 31일)를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서 그곳의 초대 주교로 임명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들 지역들은 오늘날 그리스 정교회가 널리 전파된 지역으로 그는 그리스 정교회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좌의 수호성인으로서 많은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성 안드레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순교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가장 오래된 초기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아카이아(Achaia, 그리스 서부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부 지역)의 파트라이(Patrai)에서 60년 11월 30일 네로 황제 치세 때 순교했다고 하며 4세기경의 문헌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하며 중세 말에 덧붙여진 이야기로는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 안드레아는 보통 성화나 성상에서 X자형 십자가와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교회사”에서는 그가 그리스에 가서 전교하다가 X형 십자가에 매달려 파트라이에서 순교했다고 하며, 성 안드레아가 죽음 앞에서 바친 기도를 전해줍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내가 뵈었고 내가 사랑했던 당신, 당신 안에 있는 나를 받으소서. 당신의 영원한 나라에 내 영혼을 받으소서. 아멘.”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다가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지시에 따라 357년 순교 장소인 그리스의 파트라이로 옮겨졌고 그 후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1208년에 옮겨졌고, 15세기에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그의 두개골이 옮겨졌습니다. 그러다가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가 1964년 9월 그리스 정교회와 이룬 화해의 표시로 다시 파트라이로 그의 유해를 보냈습니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스코틀랜드 등 여러 국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는 성 안드레아 사도는 러시아까지 가서 설교했다는 미확인 전승에 따라 러시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아 왔고, 그의 유해 일부가 4세기경 스코틀랜드로 옮겨졌다는 전승에 따라 스코틀랜드에서도 특별한 공경을 받았습니다. 이는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 관리자였던 성 레굴루스(Regulus, 3월 30일)가 꿈에서 지시받은 일이라고 하는데 기록에 따르면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 안드레아가 부르는 곳으로 간 성 레굴루스는 그 지역에서 30여 년 동안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 성 안드레아 수도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왕인 앵거스 2세(Oengus II)는 832년 픽트족과 함께 잉글랜드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성 안드레아에게 기도하며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승리하면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전투 당일 하늘에 X자 모양의 구름이 떴고 스코틀랜드 군대는 승리하게 됩니다. 그 후 스코틀랜드인들은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성 안드레아의 상징인 X자 모양의 십자가를 넣은 깃발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나중에 스코틀랜드의 공식 국기로 확정하였습니다.

 

18. 11월 30일 복자 안드레아 2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안티오키아(Antiochia)

활동연도 : 1268-1348년

 

노르만의 피가 흐르는 안드레아는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났고 성 아우구스티누스 율수회에 입회하여 예루살렘의 ‘성 무덤 대성당’에서 봉사하였는데 특히 거룩한 무덤의 열쇠 담당자로 일하였습니다. 주님의 이 무덤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는 시칠리아(Sicilia), 이탈리아, 폴란드, 프랑스 등지를 순례하여 기금을 모았으며 직책을 수행하던 그 자리에서 운명하였습니다. 그의 성덕이 너무나 뛰어나 그에 대한 공경이 1360년부터 시작되었고 안드레아의 신심을 널리 전하는데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역시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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