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로 (Angelus)
같은이름 : 안겔로, 안겔루스, 안젤루스, 앤젤러스, 엔젤러스
1. 2월 6일 복자 안젤로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푸르치(Furci)
활동연도 : +1327년
중부 아브르초(Abruzzo)의 푸르치에서 태어난 안젤로의 부모는 오랫동안 자녀가 없어 사내아이를 하느님께서 주신다면 꼭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서약하였는데 성 미카엘(Michael)과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를 환시로 본 후 아들을 얻게 되자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의 규칙을 따르게 하였습니다.
안젤로는 어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코르나클라노 원장에게서 교육을 받았고 이로 인해 공부와 기도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였고 정식으로 18세 때 수도회에 입회하였습니다. 잠시 집으로 돌아온 그는 수도성소를 깊이 깨달아 다시 수도원으로 가서 파리(Paris) 유학을 떠났는데 이곳에서 질 로망 교수의 제자가 되어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였으며 이후 이탈리아로 돌아와 남은 생애를 나폴리(Napoli)의 아우구스티누스 대학의 신학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1888년 그에 대한 공격이 승인 되었습니다.
2. 2월 14일 복자 안젤로
신분 : 은수자
활동지역 : 구알도(Gualdo)
활동연도 : 1265-1325년
안젤로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변경인 구알도에서 태어났으며 순진무구함과 극도의 단순성, 그리고 예모에 있어서 돋보이는 청년이었습니다. 어느 걸인으로부터 청년 시절 빵을 빼앗은 적이 있는데 이 일은 그의 양심을 괴롭히는 최고의 과오였고 그 행동에 대해 이후에 늘 후회하다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차례 성지를 순례하였던 그는 이탈리아에서 맨발로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여행하여 신심을 단련하던 중 돌아오는 길에 카말돌리회의 평수사로 입회하게 됩니다. 그 후 자신의 소망인 독수 생활을 할 허가를 받은 그는 거의 40년 간 자신의 성소에 충실하였습니다. 그가 운명한 1325년 1월 25일에 이상한 종소리가 인근 지역에 울려 퍼져서 그의 암자로 주민들이 찾아가니 그가 운명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825년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습니다.
3. 2월 15일 복자 안젤로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보르고 산 세폴크로(Borgo San Sepolcro)
활동연도 : +1306년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보르고 산 세폴크로에서 태어난 안젤로는 톨렌티노(Tolentino)의 성 니콜라우스(Nicolaus, 9월 10일)가 활약할 당시에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하였으며 수도회의 명에 따라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영국 내 보급을 위해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1921년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4. 4월 12일 복자 안젤로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키바소(Chivasso)
활동연도 : 1411-1495년
안젤로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 키바소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양친은 피에몬테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볼로냐(Bologna) 대학에서 수학하여 민법과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고향에 돌아와 주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모친이 사망하자 형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준 후 본인은 제노바(Genova)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젤루스의 장상은 안젤로에게 뛰어난 재능이 있으며 선교열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그를 훌륭한 인물로 양성하였는데 특히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온정을 베풀었고, 환자들을 돌보면서 탁발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사보이아(Savoia)의 공작 카를로 1세는 안젤로를 자신의 고해신부로 모셨고 그에게 제노바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9월 15일)도 늘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그는 소위 “숨마 안젤리카”(Summa Angelica)라는 윤리 신학서를 저술하였습니다.
작은 형제회는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의 임기 중 모슬렘의 침공이 있었을 때 위험에 처한 지역 국민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안젤루스는 그들 중에서도 늘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신자들을 돌보았고 1491년 80세의 노령에도 그는 선교단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Innocentius VIII)는 그를 주교로 승품시키려 하였으니 끝내 그는 거절하였고 자신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여든의 나이에도 구걸하였으며 쿠네오(Cuneo) 수도원에서 마지막 2년을 지내다가 84세의 일기로 운명하였습니다.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습니다.
5. 5월 5일 성인 안젤로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 1145-1220년
성 안젤로의 부모는 성모님의 환시를 보고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예루살렘의 유대인이라고 아려져 있으나 이 이야기는 그다지 신뢰할 수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 부부에게 성모님은 너희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이미 오셨고,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셨다고 하시면서 두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카르멜 산의 올리브 나무처럼 그들이 무럭무럭 자라리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약속대로 부모는 쌍둥이를 얻었는데 둘 모두 머리가 비상하였으며 영적인 선물도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어와 라틴어,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하였으며 18살이 되던 해에 카르멜회에 들어갔습니다.
주님께서 카르멜 산의 은둔소에서 성 안젤로가 5년을 지낼 때 발현하시어 시칠리아(Sicilia)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고 그는 즉시 시칠리아로 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고 200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팔레르모(Palermo)에서 설교를 통해 개종시켰으며 레오카타(Leocata)에서도 비슷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자신의 누이와 근친상간을 일삼아 성 안젤로로부터 큰 비난을 받던 레오카타에는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라는 백작은 이에 분노하여 일단의 불량배를 동원하여 그가 설교하는 중에 군중들을 혼란시킨 후 그를 칼로 찔러 살해하였는데 그는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후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살인자를 용서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졌습니다. 후에 레오카타의 카르멜회 성당으로 그의 유해가 옮겨 모셔졌으며 그는 시칠리아의 성 안젤루스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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