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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베드로(Peter) 축일 4.(20-23) _ 4월 30일, 5월 7일, 5월 8일, 5월 15일

 

베드로(Peter)

 

같은이름 :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베드로(Peter)는 2020년 서울대교구에서 조사한 서울대교구 신자의 세례명 중 3번째로 많이 사용하는 세례명입니다.

 

총 베드로는 100명이 넘게 계시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축일은 6월 29일입니다.

 

베드로(Peter) 축일 1. _ 6월 29일, 2월 22일

 

다른 축일을 택하고 싶으신 분은 다른 베드로 세례명들 중에서 선택하셔도 괜찮습니다.

 

20. 4월 30일 성인 베드로

신분 : 수도승, 순교자 

활동지역 : 코르도바(Cordoba)

활동연도 : +855년

 

성 아마토르(Amator)는 에스파냐 남부 코르도바 부근 마르토스(Martos)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수학한 후 사제품을 받았는데 수도승인 성 베드로(Petrus)와 평신도 친구인 성 루도비쿠스(Ludovicus)와 함께 설교자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코르도바에서 복음선포자들을 깨끗이 쓸어버리려는 사라센 제국에 의해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

 

21. 5월 7일 성인 베드로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파비아(Pavia)

활동연도 : +735년

 

랑고바르드족(Langobard)이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에 세운 랑고바르드 왕국의 왕이자 그의 혈족인 리우트프란드(Liutprand)의 통치 기간 중에 성 베드로(Petrus) 주교는 파비아의 주교좌를 짧은 기간 동안 다스렸습니다.

 

22. 5월 8일 성인 베드로 

5월8일-성-베드로
성 베드로(5월 8일)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타랑테즈(Tarentaise)

활동연도 : 1102-1175년

 

프랑스 비엔(Vienne) 교외의 생모리스(Saint-Maurice) 태생인 성 베드로(Petrus)는 스무 살 경 그의 두 형제와 아버지와 함께 본느보(Bonnevaux)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의 성덕이 알려지면서 1132년에 제네바(Geneva)와 사부아(Savoie) 사이 타랑테즈 산맥에 있는 타미(Tamie) 수도원의 첫 번째 원장으로 파견됩니다.

그는 그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집을 짓습니다.

1142년에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타랑테즈의 주교로 축성되었는데 시토회의 규칙을 교구 개혁에 도입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의 주요 사업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의 산맥을 넘는 순례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도움을 베푸는 일이었고 그는 수확 전 춘궁기에 가난한 농민들에게 빵과 수프를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었고 이를 프랑스인들은 '5월의 빵'이라고 불렀고 프랑스혁명 전까지 지속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타랑테즈의 주교로서 13년이 지났을 때 몰래 교구를 떠나 스위스에 있는 한 시토회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지내고자 했던 그는 결국 다시 교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돌아와서 그는 교황과 왕의 고문으로서 프랑스에서 교황권을 옹호하는데 힘씁니다. 

1191년 성인품에 올랐고 '타랑테즈의 베드로'로 불리는 유명한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다른 한 명은 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5세(Innocentius V, 6월 22일)가 되었습니다.

 

 

23. 5월 15일 성인 베드로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람프사쿠스(Lampsacus)

활동연도 : +251년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 헬레스폰투스(Hellespontus) 지방의 람프사쿠스에 한 젊은 그리스도인이 있었는데 귀족 출신으로 재능의 탁월함과 신앙과 덕에 있어서 뛰어났던 성 베드로(Petrus) 입니다.

트로아스(Troas)에서 지방총독인 옵티무스(Optimus)는 모든 신자들을 비너스(Venus) 신전 앞에 끌어다 놓고 희생 제물 바치기를 강요하였는데 이때 성 베드로는 용감하게

"당신이 그 행동은 나에게 악명 높은 음란한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라고 명령하는 것인데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오. 언급조차 하기 싫은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는 것을 당신의 법으로 처벌한다는 것도 놀랍소”

하며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그 즉시 옵티무스는 그를 바퀴에 매달라고 명령하였고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뼈는 부스러지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의 눈을 하늘로 향하고 힘찬 표정으로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이 잔인한 폭군을 이길 수 있는 인내를 주셨기에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성 베드로의 결심을 본 옵티무스는 참수를 명령합니다.

 

성 베드로의 참수 후 성 안드레아(Andreas)와 성 바오로(Paulus) 그리고 니코마쿠스(Nicomachus)가 옵티무스 앞에 서게 되는데 지방총독은 각자의 고향과 종교를 물었고 니코마쿠스는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오.”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강요받자 니코마쿠스는

“그리스도인들은 악마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소.”

라고 말합니다.

지방총독은 그를 고문대에 매달고 고문하도록 명령하였는데 고통을 못 이길 정도가 되자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준비가 되어 있소”

하며 배교합니다.

지방총독은 그를 고문대에서 끌어내리라고 명령하였고, 그는 제사를 드리자마자 마귀에 의해 사로잡혀서 땅에 넘어져서 머리를 찧으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죽게 됩니다.

16세가량 된 나약한 처녀였던 성녀 디오니시아(Dionysia)는 이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엾은 사람! 순간의 안락을 위해 영원한 고통으로 자신을 내던지다니!”

이 말을 들은 옵티무스는 그녀가 그리스도교 신자인지를 물었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하는데 그러자 그는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매춘을 시킨 후 화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은 효과가 없었으며 그러자 지방총독은 두 명의 젊은 청년에게 그녀의 순결을 빼앗도록 명령했고 청년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갔지만 거센 저항에 그만 나가떨어지고 맙니다. 자정을 넘기자 빛으로 반짝이는 젊은이가 나타나 집 전체에 빛을 퍼뜨리며 그들 앞에 섰는데 놀란 두 청년은 성스러운 처녀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 그녀는 청년들을 일으켜 세우고 겁내지 말라고 하며 말하며

 “이분은 나의 수호자이자 보호자이십니다.”

라고 말하였으며 그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해가 끼치지 않도록 그녀에게 중재를 요청합니다.

다음날 아침 이교도의 사제에 의해 흥분된 군중들이 지방총독의 집을 에워싸고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를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거칠게 요구하는데 군중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지방총독은 그들을 불러내어 디아나(Diana) 여신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하지만 그들이 거부하자 총독은 그들에게 채찍질을 하고 구경꾼들에게 넘겨주고 구경하던 군중들은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에게 돌을 던져 죽게 합니다.

성녀 디오니시아는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를 처형하는 무질서한 소리를 듣자 울부짖기 시작하였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경비병들로부터 빠져나와 그들이 있던 곳으로 달려가 자신의 동료들을 보면서 외칩니다.

 “당신들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지금 당신들과 함께 이곳에서 죽겠습니다.”

지방총독은 성녀 디오니시아가 순결을 지키게 된 놀라운 사건과 순교자들과 함께 죽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성 안드레아와 성 바오로에게서 데리고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참수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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