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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막달레나(Madeleine) 축일 - 4월 10일, 5월 25일

 

막달레나(Madeleine)

 

1. 4월 10일 성녀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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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막달레나(4월 10일)

신분 : 설립자

활동지역 : 카노사(Canossa)

활동연도 : 1774-1835년

같은이름 : 마들렌, 막딸레나

 

성녀 막달레나(Magdalena)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귀족가문에서 1774년 3월 1일 태어났으나 부친을 어려서 잃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나이 8세에 자녀들을 남겨둔 채 재혼하여 떠나버립니다. 그녀와 형제들은 삼촌 밑에서 자라게 되는데 삼촌의 학대로 인해 그녀는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녀가 될 마음을 먹은 그녀는 가까이 있던 카르멜회로 갔지만 성소가 없었던지 돌아오고야 말았고 당시 나폴레옹이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녀의 카노사 성을 나폴레옹이 둘러보러 왔을 때 용기를 내어 그녀는 용기를 내어 텅 비어 있던 성 요셉(Josephus) 수도원을 달라고 청하고 그는 이를 쾌히 승낙합니다. 여기에서 그녀는 가난한 사람과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착수하였습니다.

 

또 베네치아(Venezia)로 갔을 때 그녀는 빛나는 옷을 입은 6명의 수도자들에 둘러싸인 성모님의 환시를 보게 되고 즉시 성모의 명에 따라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모든 사업은 나폴레옹의 도움이 컸습니다. 이리하여 그녀는 ‘애덕의 딸 카노사 수녀회’를 설립하였고 그녀를 비오 11세(Pius XI)는 이렇게 평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선사업을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으나, 가난한 사람과 더불어 가난해지기는 지극히 어려운데 그녀는 실제로 가난하였다.” 성녀 막달레나는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1941년 시복되었고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8년 10월 2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2. 5월 25일 성녀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Madeleine Sophie Ba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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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5월 25일)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연도 : 1779-1865년

같은이름 : 마들렌, 막딸레나, 소피 바라

 

술통 제조업자인 아버지 자크 바라(Jacques Barat)와 어머니 마들렌 푸페(Madeleine Foute) 사이에서 막내딸로 1779년 12월 12일에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즈와니(Joigny)에서 태어난 성녀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Magdalena Sophia Barat, 또는 마들렌 소피 바라)는 열한 살 위의 큰 오빠 루이(Louis)에게 라틴어와 고전문학, 신학과 철학 등 좋은 교육을 받게 됩니다. 나중에 예수회의 사제가 된 루이는 동생인 그녀에게 항상 엄격한 규율과 벌을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동생의 교육을 위해 루이는 16세 된 성녀 막달레나를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리(Paris)로 데리고 가서 여러 젊은 여성들과의 만남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당시의 프랑스 사회는 대혁명의 여파로 인해 전통적인 가치와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성녀 막달레나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부르심의 징표로 감지하였고 21세 되던 때에 예수회의 조제프 바랭(Joseph Varin) 신부를 오빠의 소개로 만나 장차 성심 수녀회(Society of the Sacred Heart)를 창설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녀를 바랭 신부는 ‘예수 성심’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수녀회의 초석이 될 적임자로 생각하였고 그래서 성녀 막달레나와 세 명의 동료들이 1800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 예수 성심께 서원함으로써 성심 수녀회의 설립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 성심의 무한한 사랑에 보답하며 그 사랑을 널리 알리는 것을 근본정신으로 하는 성심 수녀회는 특히 청소년 교육을 통하여 설립 목적을 구현해가고자 하였으며 1801년인 설립 이듬해에는 그들의 첫 수녀원과 성심학교를 파리 북쪽의 아미앵(Amiens)에 세웠고, 그녀는 1802년에 당시 23세로 회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장상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806년 성심 수녀회 1차 총회에서 초대 총원장으로 선출된 그녀는 수녀회의 발전을 위해 일생동안 헌신하였으며 프랑스 전역으로 성심 수녀회는 퍼져나갔고, 1804년에는 그르노블(Grenoble)의 성모 방문 수녀회 공동체를 흡수하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미국에 1818년 선교사로 파견되어 성심 수녀회의 교육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였던 성녀 로사 필리피나 뒤센(Rosa-Philippine Duchesne, 11월 17일)도 끼어 있었습니다. 이 수녀회는 교황 레오 12세(Leo XII)로부터 1826년에 공식 승인을 받게 됩니다.

 

발전을 거듭한 성심 수녀회는 유럽 각국 주교들의 요청에 의해 성심학교를 여러 나라에 설립하였고 1830년 프랑스의 7월 혁명으로 인해 푸아티에(Poitiers)의 수련소가 폐쇄를 당하자 그녀는 스위스에 새로운 수련소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녀가 파리에서 선종할 즈음인 1865년 5월 25일 주님 승천 대축일에 성심 수녀회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중남미 등의 16개 나라에 122개의 수녀원과 많은 학교가 있었습니다. 성녀 막달레나는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1908년 시복되었고,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1925년 5월 25일 시성되었습니다. 예수 성심에 대한 돈독한 신심과 사랑과 겸손의 실천은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녀 막달레나의 특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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