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Teresa)
3. 10월 15일 성녀 데레사
신분 : 설립자, 신비가, 교회학자
활동지역 : 아빌라(Avila)
활동연도 : 1515-1582년
같은이름 : 테레사, 테레시아, 대데레사, 대 데레사
신심 깊은 아버지 알론소 산체스 데 세페다(Alonso Sanchez de Cepeda)와 어머니 베아트리스 데 아우마다 이 쿠에바스(Beatriz de Ahumada y Cuevas)의 딸로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의 아빌라에서 태어난 성녀 데레사는 어려서부터 고향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아빌라의 강생 카르멜 수도원에 19세에 입회하였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갈망하여 1537년 11월에 수도서원을 하였지만 잠시 지병으로 수녀원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하였으나 20년 가까이 수도생활에 정진하였고 극심한 고행으로 몸이 쇠약해져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기도 하였지만 40세에는 내적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1554년 수난받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으로 인해 내적 회심을 경험한 이후 그녀는 여러 번 환시를 보고 신비스러운 음성을 듣게 되는데 알칸타라(Alcantara)의 성 베드로(Petrus, 10월 19일)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기 전까지는 불안에 떨어야 했으며 그 모든 환시가 진실한 것임을 성 베드로 신부는 그녀에게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녀는 4명의 수녀들과 함께 당시의 다소 느긋한 수도생활보다 카르멜회의 초기 규칙대로 보다 엄격한 수도 생활을 하기 위하여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맨발의 카르멜회'(discalceati)를 시작하였고 아빌라에 1562년 성 요셉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카르멜회의 총장인 루베오 신부는 1567년 성 요셉 수도원과 같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다른 수도원을 세울 수 있도록 그녀에게 허락하였습니다. 그녀는 제2의 수도원을 메디노 델 캄포에 세웠고 이때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이란 젊은 수도자를 만났고 두루엘로에 1568년에 남자를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최초의 맨발의 카르멜 남자 수도회입니다.
성녀 데레사는 카르멜 수도원의 개혁을 위해 에스파냐 전역을 다니면서 노력했으나, 그녀의 개혁 그룹을 1575년의 총회에서는 제한하기도 하였으며 1580년까지 카르멜회 내부의 완화파와 개혁파 간의 투쟁은 격심하였는데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는 이윽고 완화 카르멜회로부터 개혁을 추구하는 '맨발의 카르멜회'를 분리시켜 독립 수도회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지은 수많은 편지와 책은 영성 문학의 고전이 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으며 그중에서 특히 자서전인 "천주 자비의 글"(1562-1565년), "완덕의 길"(1565년), "영혼의 성"(1577년) 등이 유명합니다.
성녀 데레사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신비가 중의 한 명으로 지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이었고 매력적이며 깊은 영성을 지녔습니다. 차원 높은 관상생활과 수준 높은 활동생활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던 위대한 성녀였던 그녀는 부르고스(Burgos)에서 아빌라로 가던 1582년 9월 말경 알바 데 토르메스(Alba de Tormes) 수도원에 머물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10월 4일 선종하였습니다.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1614년 시복되었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에 의해 1622년 시성되었으며 교황 성 바오로 6세에 의해 1970년 9월 27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4. 9월 5일 성녀 데레사(마더)(Teresa(Mother))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지역 : 콜카타(Kolkata)
활동연도 : 1910-1997년
같은이름 : 테레사, 테레시아, 마더 데레사, 마더 테레사, 마더데레사, 마더테레사,
알바니아계인 아버지 니콜라 보약스히야(Nikola Bojaxhiu)와 어머니 드라네 보약스히야(Drane Bojaxhiu) 사이에서 1910년 8월 26일 터키가 점령 중이던 알바니아(Albania)의 스코페(Skopje)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성녀 마더 데레사는 태어난 다음날 곤히아 아녜스(Gouxha Agnes)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태어나고 2년 뒤인 1912년 터키로부터 알바니아는 독립했지만 스코페는 여전히 알바니아의 영토가 아니었으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후 세르비아를 모태로 탄생한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고, 현재 스코페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1991년 독립한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수도입니다.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로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철저히 신앙교육을 받은 그녀는 선축업자였던 아버지를 9살 때 갑자기 여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성인전과 선교사들의 이야기에 소녀 시절부터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1928년 18살 되던 어느 날 기도 중에 자신이 평소 선교에 대해 갖고 있던 관심이 수도 성소로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회원이었던 본당신부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인도의 콜카타에서 전교 중인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의 로레토 수녀회(Sisters of Loreto)에 그해 11월 29일 입회하였습니다.
그녀는 집중적으로 더블린에서 영어를 공부한 후 인도(India)에 1929년 도착하였고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 있는 다르질링(Darjiling)에서 수련기를 시작하였습니다. 1931년 5월 24일 첫 서원을 한 그녀는 자신의 수도명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된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로 택했습니다. 그 후 성녀 테레사 수녀는 7년간 로레토 수녀회가 운영하는 콜카타(옛 지명은 캘커타, Calcutta)의 성모여자고등학교에서 지리와 역사를 가르쳤고 1937년 5월 24일 종신서원을 했고, 1944년에는 그 학교의 교장이 되었습니다.
연례 피정 참석차 1946년 9월 10일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 속에서 그녀는 그녀 스스로 후에 ‘부르심 속의 부르심’이라 묘사한 놀라운 체험을 하였는데 수도회를 떠나 가난한 사람들 속에 살며 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소명을 들은 것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교황청의 특별한 허락을 받아 1948년 수도회 밖에서 수도자로 살 수 있게 되었고 그녀는 수도복으로 전통적인 서구식 수녀복장 대신 인도 여성들이 평상복으로 입는 사리를 택하고 성가정 병원에서 기초 간호학을 속성으로 이수한 후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모여자고등학교 출신 제자인 슈바시니 다스가 찾아와 1949년 3월 19일 아직 형성되지도 않은 수도회에 받아주길 간청했고 성녀 마더 테레사와 첫 지원자로서 합류하였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난한 이들과 함께, 그들 안에서 살고자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가 1950년 10월 7일 교황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처음부터 함께하였던 12명의 회원이 수련기를 시작하였습니다. 1952년 8월 22일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임종자의 집을 열었는데, 아픈 이들이 문을 열자마자 정원까지 꽉 들어찼습니다. 사랑의 선교회 본원이 1953년 설립되었고, 이어서 콜카타 외곽에 나환자들을 위한 자립 센터와 빈민굴의 고아들을 위한 집도 열게 됩니다.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 5월 29일)는 1965년 2월 1일 세계교회 안에서 사랑의 선교회가 일할 수 있도록 승인해 주었는데 이는 사랑의 선교회가 교구 설립 수도회로 지역 주교의 관할 안에서만 활동하였으나 이제는 세계 어디서나 선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때 사랑의 선교회에는 이미 3백여 명의 수녀들이 여러 개의 시설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첫 해외 분원을 베네수엘라(Venezuela)에 연 이후 아프리카, 호주, 유럽 등 여러 대륙에 진출하였습니다. 성녀 마더 테레사의 적극적 후원자가 된 교황 성 바오로 6세는 그녀가 선교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바티칸 시민권을 수여하였으며 이렇게 하여 1971년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 50여 개의 분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선교회 협조자회’가 1969년 3월 26일 교황청으로부터 회칙을 인가받아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는데 이 협조자들은 사랑의 선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세게 곳곳에 성녀 마더 테레사와 사랑의 선교회 활동이 알려지면서 여러 국제적인 상을 받기도 한 그녀는 1979년 12월 10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 상을 성녀 마더 테레사는 자신이 온 삶을 바쳐 섬기고 사랑한 가난한 이들의 이름으로 받았으며 사랑의 선교회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후 더욱 놀라운 속도로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습니다.
성녀 마더 데레사는 1970년 이후 여러 곳에 알코올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하고 사회 복귀를 돕는 치료 센터를 열었으며 나환자 병원과 나환자들을 위한 재활 및 사회 복귀 시설을 운영하였으며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보호 시설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 그리고 영양실조에 걸린 이들과 결핵 환자들을 위한 치료소와 요양소들도 설치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후천성면역결핍증(HIV,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활동도 시작하였습니다.
성녀 마더 데레사는 1990년 4월 16일 건강을 이유로 총장직에서 물러났으나 같은 해 9월 다시 총장직에 선출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이며 세계 모든 이들의 영적 어머니인 그녀는 1997년 9월 5일 콜카타에서 87세를 일기로 선종하였고 그녀의 선종 소식에 전 세계가 종교와 이념, 민족과 인종을 초월해 한결같이 ‘인류의 참 어머니’를 잃었다며 애도하였습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0월 22일)는 살아서부터 ‘성녀’로 추앙받았던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의 시복식을 2003년 10월 19일 그녀의 선종 6년 만에 거행했하였습니다. 30여만 명의 순례자들이 모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은 “오늘 하느님은 우리에게 마더 테레사를 새로운 거룩함의 모범으로 제시해 주셨다.”라며 그녀의 시복을 선언하였고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은 2016년 9월 4일 같은 장소에서 그녀를 성인의 품에 올렸습니다. 시성식 강론에서 교황은 온 생애를 통해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풍성히 나누어 주었던 성녀 마더 테레사를 기억하며, 그녀를 통해 이해와 자비를 바라는 인류에게 희망과 기쁨이 함께하길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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