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Teresa)
1. 6월 17일 복녀 데레사
신분 : 왕비, 수녀
활동지역 : 포르투갈(Portugal)
활동연도 : 1176-1250년
같은이름 : 테레사, 테레시아
데레사는 복녀 마팔다(Mafalda, 5월 2일)의 언니로 포르투갈 왕 산초 1세(Sancho I)의 장녀로 레온(Leun)의 왕 알폰소 9세(Alfonso IX)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혼인이 사촌 간의 결혼이란 이유로 무효로 선언되었고 이에 포르투갈로 돌아와 자신의 영지인 로르바요(Lorvao) 수도원에서 살았습니다. 과거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따르던 수도원을 그녀는 시토회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으로 전환하였으며 그곳의 수녀는 한때 300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알폰소 9세가 사망하자 잠시 레온 왕국으로 가서 왕위 계승 문제를 도와준 그녀는 다시 로르바요로 돌아와서 수도 서원을 한 후 수녀로서 살다가 1250년 6월 18일 선종하였습니다.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1705년 시복되었고 가톨릭교회에서 전례적으로는 6월 17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2. 10월 1일 성녀 데레사
신분 : 수녀, 교회학자
활동지역 : 리지외(Lisieux)
활동연도 : 1873-1897년
같은이름 : 테레사, 테레시아, 소화데레사, 소화 데레사, 성면의 데레사, 아기 예수의 데레사, 예수 아기의 데레사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Basse-Normandie)의 알랑송(Alencon)에서 태어난 성녀 테레사의 아버지는 시계 제조업을 하던 성 루이 마르탱(Louis Martin, 7월 12일)였으며 어머니는 성녀 마리아 젤리 게랭 마르탱(Maria-Zelie Guerin Martin, 7월 12일)입니다. 그녀는 아홉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수와즈 테레즈 마르탱(Marie Francoise-Therese Martin)으로, 보통은 ‘소화(小花) 데레사’로 많이 불린고 있습니다. 1877년 8월 28일 그녀가 5살이 채 못되었을 때 어머니를 여읜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리지외로 옮겨 가서 살게 됩니다.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성녀 데레사는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고 둘째 언니인 마리 폴린느(Marie Pauline)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하였지만 둘째 언니마저 그녀가 10살쯤 되던 해 첫째 언니가 있는 리지외의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자 그 상실감으로 인해 알 수 없는 병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몇 달간 심하게 앓았던 그녀는 때로는 경련과 환각을 일으켰고 의식을 잃게도 하였는데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어려서부터 특별했던 그녀는 1883년 5월 13일 성모님의 발현을 체험하였고 그 후 기적적으로 그 이상한 병에서 치유되었습니다. 그녀는 집에 있었는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에 미소 지으며 자신에게 성모님께서 다가오시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듬해 11살의 나이에 그녀는 첫영성체를 하고 그 얼마 후에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직후 성녀 데레사는 훗날 “자서전”에서 ‘완전한 회개의 은혜’라고 부른 특별한 은총을 받았는데 자신의 영혼 안에 애덕이 깃드는 체험을 하였으며 이웃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잊어야 하는 이타적 사랑의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며칠 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그린 상본을 바라보면서 다른 영혼들을 돕고 싶은, 자신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망에 사로잡혔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머무르면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의 성혈을 다른 이들의 영혼에 전해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녀는 성탄절의 특별한 회심의 은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달아 갔습니다.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을 위해 고통을 기꺼이 참아 받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니고 리지외에 있는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에 14살 때 입회를 신청합니다. 이미 그녀의 두 언니, 즉 첫째인 마리 루이즈(Marie Louise)와 둘째인 마리 폴린느가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이미 입회해서 살고 있었으나 수녀원에서는 그녀에게 21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하였고 이에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는 교구의 주교에게 입회 허가를 청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와 일곱째 언니인 마리 셀린느(Marie Celine)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면서 교황 레오 13세(Leo XIII)를 알현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때 수녀원 입회를 허락해 달라며 교황의 품에 달려들어 눈물로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입회하겠지”라고 대답하였고 1888년 4 9일 결국 성녀 테레사는 15살 때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게 됩니다. 로마에서의 일을 전해 들은 리지외 교구의 주교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 그녀의 입회를 특별히 허락해 주었다고 합니다.
1897년 성녀 데레사는 24살의 젊은 나이로 선종할 때까지 9년 반 동안 지극히 평범한 수도 생활을 하였습니다. 1889년 1월 10일 ‘아기 예수와 성면(聖面)의 테레사’라는 수도명을 선택한 그녀는 착의식을 거행하였고 이듬해 9월 24일에 첫 서원을 하였습니다. 성격이 까다롭고 질투심 많은 곤자가의 마리(Marie de Gonzague) 원장 수녀로 인해 성녀 테레사는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내부 분열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을 멀리하고 자신의 기도 생활에 열중하였으며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수도원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평범한 수녀였습니다. 그녀의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까지는 그녀가 이룬 하느님과의 친밀감과 충실성은 그 어느 수녀의 눈에도 띄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1893년 2월 20일 수련장 보조자 발령을 받아 4년 동안 소임을 수행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고 살았는데 그녀의 ‘작은 길’에는 특별하거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작은 길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일 뿐이었으며 그것은 어떤 삶의 방법이 아닌 하느님 앞에서 영혼이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하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1894년 7월 29일 선종한 후 카르멜 수녀원에 아버지를 돌보던 다섯째 언니 마리 셀린느까지 입회해 네 자매가 함께 수도 생활을 하게 되었고 셋째 언니 마리 레오니(Marie Leonie)는 1886년 클라라 관상 수도회에 입회하여 9남매 중 어릴 때 죽은 네 명을 뺀 다섯명의 자매가 모두 수녀가 되었습니다. 1894년 10월 말 원장이 된 둘째 언니 폴린느(수도명 예수의 아녜스)의 명으로 그녀는 자서전을 쓰게 되었고 그러면서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1896년 4월에 처음으로 결핵 증세가 나타나면서 그녀는 각혈을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건강이 점점 나빠졌지만 병실로 옮겨서 생활하게 된 그해 7월까지 수녀원의 기본 의무들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숙소를 병실로 옮긴 후 마지막까지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녀는 자서전을 마무리해 나갔고 이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자신이 경험하였던 ‘작은 길’을 알려야 할 사명을 수행하고자 하였습니다. 1897년 8월 9일 성녀 데레사는 마지막 성체를 모셨고 9월 30일 저녁,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성녀 테레사가 선종한 후 1년이 지나자 통상적인 관습대로 카르멜 수녀회는 그녀의 “자서전”을 비공식 출판해 여러 카르멜 수녀원으로 보냈는데 그녀의 자서전을 읽고 감동한 수녀와 신자들의 요구로 그녀의 자서전은 공식적으로 출판하게 되었고 해가 갈수록 큰 관심을 받아 불과 10여 년 만에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여러 나라에서 수백만 권이 넘게 보급되었습니다. 성녀 테레사에 대한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반응은 가히 놀라운 것이었는데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이 반응을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교황 비오 11세는 시복과 시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사후 50년을 기다려야 하는 교회 관례를 무릅쓰고 그녀가 선종한 지 26년 만인 1923년 4월 29일 시복식을 거행하였고 1925년 5월 17일 시성식을 갖고 성녀 데레사를 ‘아기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선포하였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로마를 순례했을 때 외에는 성녀 데레사는 고향인 알랑송과 리지외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으나 일평생 다른 영혼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보속의 삶을 살았기에, 1927년 12월 14일 교황 비오 11세는 그녀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 12월 3일)와 더불어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였고, 1944년 5월 3일에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를 성녀 잔 다르크(Joanna Arcensis, 5월 30일)에 이어 프랑스 제2의 수호자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녀 테레사의 선종 100주년이 되는 1997년 6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0월 22일)는 그녀를 보편교회의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녀가 남긴 저서로는 “성녀 소화 테레사 자서전”, “성녀 소화 테레사의 마지막 남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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