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루카(Luke) 축일 - 2월 6일, 2월 7일, 4월 22일, 10월 18일

 

루카(Luke)

같은이름 : 누가, 루가, 루까, 루크, 루카스

 

1. 2월 6일 성인 루카

신분 : 부제, 순교자

활동지역 : 에메사(Emesa)

활동연도 ; +235/238년경

 

옛 “로마 순교록”은 40년 동안 페니키아(Phoenicia, 오늘날의 시리아와 레바논 해안지대로 지중해 동안을 일컫는 고대 지명) 지방 에메사에서 교회를 이끌던 성 실바누스(Silvanus) 주교가 다른 두 명의 그리스도인과 함께 체포되어 막시미아누스 황제(286~305년, 306~308년 재위) 치하에서 맹수들에게 던져져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고 2월 6일 목록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성 실바누스 주교에 대해 같은 날 목록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오늘날 40년 동안 교회를 이끌었던 성 실바누스 주교를 시리아 서부의 도시인 홈스(Homs, 고대 도시명은 에메사)에서 기념하는데 부제인 성 루카(Lucas, 또는 루가)와 독서자인 성 무키우스(Mucius)와 함께 막시미누스 황제(235~238년 재위) 치하에서 맹수에게 던져져 순교했다고 적으면서 동료 순교자들의 이름을 전해주었고, 옛 “로마 순교록”은 티레(Tyre)의 주교였던 성 티란니오(Tyrannio, 2월 20일)와 비슷한 시기에 순교했다고 보았지만 그보다 70년 이상 앞선 시대로 수정하였습니다.

 

2. 2월 7일 성인 루카

신분 : 은수자

활동연도 : +946년경

 

성 루카는 '타우마투르구스'(Thaumaturgus, 기적을 행하는 사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이나(Aegina) 섬에서 출생하였으나 사라센인들의 침공으로 인해 그리스 중북부 지역인 테살리아(Thessalia)로 이주하여 가난하게 살있던 그는 순종적이고 열심한 청년으로 들일을 거들거나 양떼를 돌보며 살았으며 가끔 자기 옷을 벗어 헐벗은 이에게 주거나 걸인을 먹이기 위해 자신이 굶기도 하였는데 이는 부친의 분노를 사기도 하였습니다.

 

부친이 사망하자 들일을 그만둔 그는 수도자가 되려는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지만 군인들에게 붙잡혀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 루카에게 그들이 너는 누구냐 하자, “나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 후 탈출하는데 성공하여 수도자가 되려고 다시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그는 코린토스(Corinthos) 교외의 요안닛사(Joannitsa) 산에 은둔소를 짓고 18년을 은수자로서 살았습니다.

 

항상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살았던 그였지만 때로는 유혹과 밤새도록 씨름하기도 하였는데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기적을 행하는 은혜를 받았던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 은혜를 통하여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임종한 자리는 나중에 성당이 되었는데 기적의 장소라는 뜻인 소테리온(Soterion)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3. 4월 22일 성인 루카

신분 : 부제, 순교자

활동연도 : +250년

 

사제였던 성 크리소텔루스(Chrysotelus), 성 파르메니우스(Parmenius), 성 헬리메나(Helimenas)는 테키우스 황제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를 침략했을 때 부제였던 성 루카(Lucas, 또는 루가)와 성 무키우스(Mucius)와 함께 바빌론(Babylon) 근교에서 신앙 때문에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4. 10월 18일 성인 루카

10월18일이-축일인-성-루카
성 루카(10월 18일)

 

신분 : 복음사가, 증거자

활동연도 : +1세기

 

교회사학자 에우세비우스(Eusebius), 리옹의 성 이레네우스(Irenaeus, 6월 28일),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 등에 따르면, 안티오키아(Antiochia)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인 성 루카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의 ‘협력자’(필레 1,24)이자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라고 알려져 있으며 성 바오로는 실제로 그를 서간에서 ‘사랑하는 의사 루카’라고 지칭하였습니다(콜로 4,14). 많인 이들이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12월 26일) 부제의 순교와 박해로 흩어져 복음을 전했는데, 안티오키아 역시 그런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들을 돌보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는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를 파견하였고 성 바르나바는 타르수스에 있던 성 바오로를 데려와 그와 함께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성 루카는 이때 사도들과 알게 되었으며 성 바오로를 특별히 깊이 존경하고 따랐던 듯합니다. 51년경에 있었던 사도 바오로의 제2차 선교 여행을 그는 수행하면서 힘껏 도왔고 필리피(Philippi)에 57년까지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한 후 성 바오로의 제3차 선교 여행 때도 만난 듯합니다. 그는 성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의 감옥에 갇혔을 때와 로마로 호송되어 감옥에 갇히고 재차 갇혔을 때도 늘 그의 곁에 있었으며(콜로 4,14; 필레 1,24; 2티모 4,11). 사도 바오로가 순교한 후 그리스로 건너간 듯 보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복음서를 집필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Maria)를 찾아뵌 그는 주님의 탄생 전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직접 성모 마리아를 뵐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고도 전해집니다. 이때문에 전통적으로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 초상화로 알려져 있는 이콘의 작가가 성 루카와 동일 인물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는 다른 복음서들이 전해주지 않은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기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의 모습을 ‘붓’보다는 ‘펜’으로써 마치 그림처럼 묘사해 주었습니다(루카 1-2장). 언제 어디에서 성 루카가 복음서를 집필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것은 팔레스티나 밖에서 80년 전후에 쓰였다는 것은 확실하며 루카 복음을 시작하는 머리말(1,1-4)에 따르면, 성 루카는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테오필로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Theo-philos)’이라는 인물을 통해 입문자 또는 이미 그리스도교의 기본 진리를 전해 들은 이들이 더욱 확고한 신앙을 갖도록 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복음사가 성 루카가 염두해 준 독자를 대체로 성서학자들은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로 보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와 이어지는 사도행전은 성 바오로가 예수님의 승천부터 63년경 로마에서 수인으로 생활하며 선교 활동에 매진할 때까지 초대교회의 성장기를 서술하고 있는데 전반부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에게, 후반부는 사도 성 바오로에게 집중하고 있으나 성 루카 자신에 관한 구절은 정작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겸손함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성 바오로의 순교 이후 그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아카이아(Achaia) 지방과 소아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면서 주님을 섬기며 온갖 고난을 참아내다가 84세를 일기로 선종한 듯하지만 그가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콘스탄티노플의 열두 사도 성당에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성 루카는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 특별히 강조하였으며 의사와 화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