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시오(Dionysius)
같은이름 데니스, 드니, 디오니시우스, 디오니씨오, 디오니씨우스
12. 5월 25일 성인 디오니시오
신분 : 주교, 증거자
활동지역 : 밀라노(Milano)
활동연도 : +359년경
몇 명의 주교들이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의 시성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성 디오니시오는 이들 중 끝까지 정통 그리스도교를 주장하고, 성 프로타시우스(Protatius, 11월 24일)의 뒤를 이어 351년 밀라노의 주교직에 오른 인물로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그 당시 성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빠진 황제와 신봉자들로부터 무수한 반대를 받고 있었습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355년 성 아타나시우스에 대한 단죄를 선언하기 위해 시노드를 궁중에서 소집하였는데 성 디오니시오 주교는 가톨릭 신앙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성 디오니시우스 주교는 이 회의에 스스로 참석하였습니다. 칙서에 모든 대표자들이 서명을 마치려고 할 즈음, 성 디오니시우스와 함께 베르첼리(Vercelli)의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8월 2일) 주교와 칼리아리(Cagliari)의 루치페르(Lucifer)가 완강히 거부하였고 결국 그들은 추방되었는데, 카파도키아(Cappadocia)로 피신한 성 디오니시오는 359년경 그곳에서 서거하였습니다. 그 후 그의 유해를 밀라노의 주교인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 주교가 밀라노로 옮겨와 안장하였습니다.
13. 6월 3일 성인 디오니시오
신분 : 소년, 순교자
활동연도 : +273년
원래 이방신을 믿던 사제였던 성 루킬리아누스(Lucillianus)는 연만한 나이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고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 때 체포되어 집정관이던 실바누스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고 그의 얼굴에 돌로 타박상을 입혔기 때문인데 이 사건으로 인해 채찍으로 맞고 목이 달리는 고문을 받은 그는 그 후 투옥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4명의 소년 신자를 만나 서로를 격려하였는데 4명의 소년 신자는 디오니시오와 바오로(Paulus),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히파티우스(Hypatius)입니다. 그들은 모두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14. 7월 27일 성인 디오니시오
15. 7월 31일 성인 디오니시오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신나다(Synnada)
활동연도 : +3세기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디오니시오와 성 데모크리토(Democritus), 성 세쿤도(Secundus)가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 지방 신나다(Synnada)에서 순교하였다고 7월 31일 목록에서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순교 시기나 장소 역시 명확하지 않았으나 오늘날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 속한 로마제국 속주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Mauretania Caesariensis)의 고대 도시인 신나다(Sinnada)로 순교 장소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프리지아의 신나다에서 그들이 순교하였다고 같은 날 목록에서 기록하였으며 그 시기는 3세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16. 9월 20일 성인 디오니시오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연대미상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디오니시오와 성 프리바토(Privatus)가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인 프리지아(Phrygia)에서 순교하였다고 9월 20일 목록에서 전해주었으나 그 외에 그들의 순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나 시기는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들은 프리지아의 신나다(Synnada)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더는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17. 10월 3일 성인 디오니시오
신분 : 의회 의원,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아레오파고스(Areopagos)
활동연도 : +1세기말
성 디오니시오는 아테네에서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가 선교할 때 만난 인물입니다(사도 17,16-34). 온갖 우상으로 가득 찬 아테네에 도착한 사도 성 바오로가 유다인뿐만 아니라 아테네의 여러 철학자들과 토론하며 회당과 광장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아레오파고스’(전쟁의 신인 ‘아레스의 언덕’이란 뜻)라고 부르는 나지막한 돌산으로 사도 성 바오로를 데려갔습니다. 사도 성 바오로는 그곳에서 아테네 시민을 향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시작하는 설교를 하며 창조주 하느님과 구세주 그리스도 그리고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해 선포하였는데 어떤 이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비웃었고, 어떤 이들은 약간의 관심을 보였지만 돌아갔는데 이때 사도 성 바오로의 말을 믿은 몇몇 사람이 그의 편에 가담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이 성 디오니시오였으며 그 외에 다마리스(Damaris)라는 여자와 몇몇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도 성 바오로에 의해 개종한 성 디오니시오와 다마리스라는 여자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가 자신의 책에서 인용한 코린토스(Corinthos)의 성 디오니시오(4월 8일)의 기록에 따르면, 성 디오니시오는 의회 의원이었다가 개종 후 아테네의 초대 주교가 되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인 95년경 화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재판관과 사법부의 수호자로, 그리고 아테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는 그는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9세기 이후에 꽤 오랫동안 그는 프랑스에서 파리(Paris)의 성 디오니시오(10월 9일) 주교 순교자와 혼동되어 동일 인물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옛 “로마 순교록”은 사도 성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은 성 디오니시오가 아테네의 초대 주교가 되었으며 로마로 가서 교황 클레멘스 1세(Clemens I, 11월 23일)의 축복을 받은 후 지방 복음화를 위해 갈리아 지방으로 파견되었으며, 그 후 로마로 가서 파리에서 맡겨진 직무를 몇 년간 충실하게 수행한 후 성 루스티코(Rusticus) 신부와 성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 10월 9일) 부제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고 10월 9일 목록에서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러한 오류를 수정하여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들의 순교를 10월 9일에, 아레오파고스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를 10월 3일에 기념한다고 기록하였으며 이로 인해 그들의 활동 시기 역시 1세기와 3세기로 명확하게 구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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