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John)
24. 5월 24일 성인 요한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프라도(Prado)
활동연도 : +1636년
같은이름 : 얀, 이반, 요안네스, 요한네스, 장, 쟝, 조반니, 지오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한스, 후안
성 요한은 에스파냐 레온(Leun)의 모르고브레시오(Morgobresio)에서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나 살라망카(Salamanca)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작은 형제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제직에 오르자마자 이방인들의 선교사가 되고자 하였으나 그의 소원은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마침내 1613년 모로코(Morocco) 선교단의 일원으로 파견됩니다. 일행과 함께 모로코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개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슬람 당국의 주의를 끌어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결국 성 요한은 다른 두 명의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모로코에서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모진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25. 6월 6일 성인 요한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베로나(Verona)
활동연도 : +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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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우루스(Maurus, 11월 21일)를 계승하여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가 된 성 요한은 교구 내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26. 6월 12일 성인 요한
신분 : 수사, 신부
활동지역 : 사아군(Sahagun)
활동연도 : 1419-14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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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남부의 사하군(또는 산 파콘도 San Facondo)의 부유한 집안에서 1419년 태어난 성 요한은 어려서부터 고향의 왕립 성 베네딕투스 수도원의 수도승들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살라망카(Salamanca) 대학교에 들어간 그는 신학을 공부한 후 사제품을 받아 그 지방의 교구 사제로 활동하였으며 1463년 중병에서 회복된 그는 그곳의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하여 높은 성덕을 쌓아 유명해졌습니다. 1479년 6월 11일 수도원에서 선종한 그는 그 도시의 옛 주교좌성당에 묻혔습니다. 한편으로는 부자와 귀족 청년들의 결투로 인한 가문 간의 갈등과 살해 등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그는 비판적 설교를 행했기에 많은 적이 생겼고, 이 때문에 독살되었다는 말도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는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1601년 6월 19일 시복되었고, 교황 알렉산데르 8세(Alexander VIII)에 의해 1690년 10월 16일 시성되었습니다. 그는 교회 미술에서 성작을 들고 있거나 성령의 빛으로 둘러싸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27. 6월 20일 성인 요한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마테라(Matera)
활동연도 : +11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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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은수자로 살았던 성 요한은 이탈리아 풀사노(Pulsano)의 베네딕토 수도원의 설립자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장성한 후 부친의 집을 떠난 그는 타란토(Taranto) 섬으로 건너가 양치는 일을 하면서 수도원에서 지냈고 그 후 그곳을 떠나 다시 칼라브리아(Calabria)와 시칠리아(Sicilia)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후 지노사로 와서 지냅니다.
여기서 그는 성 베드로(Petrus)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이 지역에 있는 허물어진 성당들을 수리하라는 명을 사도로부터 받고 성당을 성공적으로 수리하던 중 수많은 보물을 발견하여 이를 지방의 통치자에게 보냈는데 이것 때문에 투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는 몬테 라체노(Monte Laceno)의 성 빌리암(William, 6월 25일)의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고 그 후 풀사노에 정착하여 수도원을 세우고 수많은 제자들을 얻었습니다. 그 당시에 그의 지혜와 기적 그리고 예언은 너무나도 유명하였습니다.
28. 6월 22일 성인 요한 1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나폴리(Napoli)
활동연도 : +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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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나폴리의 주교였던 성 요한은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9월 19일)의 유해를 포추올리(Pozzuoli)에서 나폴리로 이장하였습니다.
29. 6월 22일 성인 요한 2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나폴리(Napoli)
활동연도 : +8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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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수호성인 중 한 분으로 공경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주교였던 성 요한은 '평화의 조정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30. 6월 23일 성인 요한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연도 : +3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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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성 요한은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통치 때, 로마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의 태양신 우상 앞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성 콘코르디우스(Concordius) 신부에 의해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그의 시신이 인근에 묻혔습니다.
31. 6월 24일 성인 요한 1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 +연대미상
같은이름 : 얀, 이반, 요안네스, 요한네스, 장, 쟝, 조반니, 지오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한스, 후안
옛 “로마 순교록”은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에서 성 요한과 성 페스토(Festus)를 거룩한 순교자로 공경한다고 12월 21일 목록에서 전해주었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고대 로마의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에서 성 요한과 성 페스토가 순교했다고 6월 24일 목록으로 옮겨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순교록이 전해지지 않아 그 외의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32. 6월 24일 성인 요한 2
신분 : 세례자, 예언자
활동연도 : +29년경
같은이름 : 얀, 이반, 요안네스, 요한네스, 장, 쟝, 조반니, 지오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한스, 후안, 밥띠스따, 밥티스타, 밥티스트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 즈카르야(Zacharias, 9월 23일)와 아론(Aaron)의 자손인 성 요한 세례자(Joannes Baptistae)는 성모 마리아(Maria)의 친척인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9월 23일)의 아들로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아인 카림(Ein Karem)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이가 들도록 아이가 없었던 성 즈카르야가 성소에 사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분향하러 들어갔다가 가브리엘(Gabriel) 대천사 발현을 목격하였고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를 듣게 됩니다. 그 후 이미 나이가 많았을뿐더러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던 성녀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고, 아기가 태어난 뒤 천사가 일러준 대로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였습니다(루카 1,5-25).
유다 광야에서 서기 27년경까지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은수자로 산 성 요한 세례자는 그의 나이 서른 즈음인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15년, 하느님의 말씀을 받고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성 요한 세례자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고 외치며 요르단 강에서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에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려고 오시자 그분이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구세주이심을 알아보고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말렸습니다(마태 3,14). 그러나 그리스도의 뜻대로 주님께 세례를 드리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을 목격하였고 그 후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떠나신 뒤에도 그는 요르단 계곡에서 회개의 설교를 계속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언행과 군중들에 대한 그의 예언자적 권위를 두려워하던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들어 감옥에 그를 가둔 적이 있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동생인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은 옳지 않다며 세례자 요한이 공개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때문에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헤로디아는 헤로데의 생일잔치 때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한 딸 살로메에게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청하게 하였고 손님들 앞에서 한 맹세를 들어 헤로데는 결국 요한을 참수하였습니다.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사해 동쪽 7km 지점, 오늘날 요르단에 속한 마케루스 요새(Machaerus fortress)로 압송되어 그가 처형되었다고 하나 마르코 복음서는 그의 죽음을 갈릴래아의 연회장에서 헤로디아의 계략으로 인해 참수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마르 6,17-29).
자신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그는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자 신약의 첫 예언자로서 겸손하게 자신의 소명을 다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언자보다 요한을 더 중요한 인물로 평가하며,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라고 하셨습니다(마태 11,11). 세례자 요한은 역사가들에 의하면 쿰란 공동체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교회는 세례자 요한의 축일을 탄생과 수난 기념일로 구분해 두 번 지내왔습니다. 즉, 보편 전례력 안에서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은 6월 24일로,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은 8월 29일로 지내왔는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역시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수난을 따로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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