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나(Suanna)
6. 5월 29일 복녀 강경복 수산나
신분 : 양인, 궁녀,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 한국
활동연도 : 1762년 - 1801년
같은이름 : 강 수산나, 수잔, 수잔나,
강경복(姜景福) 수산나(Susanna)는 1762년 양인 집안에서 태어나 궁녀가 되었으며, 순교할 때까지 동정으로 생활하였습니다.
그녀가 살던 집은 ‘양제궁’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폐궁’(궁궐에서 쫓겨난 왕실의 친족이 거처하던 집이라는 뜻)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 집의 주인은 송 마리아와 그녀의 며느리 신 마리아였는데 이들은 일찍부터 천주교에 입교하여, 주문모 야고보 신부나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와 자주 오가고 있었습니다.
1798년 무렵, 집주인 송 마리아는 강 수산나를 불러 천주교 교리를 설명해 주면서 이를 믿도록 권유하였으며 이때부터 강 수산나는 다른 궁녀들과 함께 교리를 배우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또한 집주인들과 함께 자주 강 골룸바의 집으로 가서 주 야고보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나 신앙 집회에 참석하곤 하였는데 그러다가 주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그 후로는 더욱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습니다.
1801년 2월, 신유박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주문모 야고보 신부는, 노비인 남구월의 안내를 받아 양제궁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강 수산나는 어머니가 사는 집에 갔다가 우연히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찾으러 다닌다.’는 말을 듣고는 급히 양제궁으로 가서 이 소식을 전하고 이로 인해 주 야고보 신부는 다행히 그곳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주 야고보 신부가 피신한 뒤 강 수산나도 양제궁을 몰래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피신하지만 얼마 안 있어 뒤따라온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마는데 포도청으로 압송된 강 수산나는 곧바로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며 그녀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이미 천주교에 깊이 빠져 있으므로, 비록 죽음을 당할지라도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포도청에서는 그녀를 상급 재판소인 의금부로 이송하였으며, 그녀는 이곳에서 더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때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진 탓에 잠시 마음이 약해져 “다시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습니다.”라고 진술합니다.
의금부에서는 이러한 진술을 듣고 강 수산나를 형조로 내려보냈는데 그녀는 의금부에서 잠시 마음이 약해졌던 것을 크게 뉘우치면서 다시 신앙을 굳게 증언하게 됩니다. 박해자들이 주문모 야고보 신부를 밀고하고 마음을 돌이켜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으며 신앙을 위해 형벌과 죽음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으므로 문초가 끝나자 다음과 같이 마지막으로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천주교에 깊이 빠져서 이를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하였으며, 양제궁에 거처하면서 주문모 신부님을 찾아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천주교 신앙을 믿는 마음이 갈수록 굳어져 왔으니, 형벌을 당해 죽는다고 할지라도 조금도 신앙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강경복 수산나는 강완숙 골룸바 등 동료들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게 되고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에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39세입니다.
강경복 수산나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습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해 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합니다.
2. 9월 20일 우술임 수산나
신분 :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 한국
활동연도 : 1802년 -1846년
같은이름 : 수잔, 수잔나, 우 수산나
성녀 우술임 수산나는 경기도 양주에 살던 어느 양반집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열다섯 살 때에 인천에 살던 어느 신자에게 시집을 가서 남편의 권고로 입교하여 신앙을 갖게 되며 1828년에 한 번 잡혀 사형선고를 받을 뻔했으나, 마침 해산이 임박하였으므로 몇 주일 동안 갇힌 생활 끝에 풀려 나왔는데 이때 받은 형벌로 인한 상처 때문에 일평생을 고생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 후 남편을 여의고 서울로 올라온 수산나는 여러 교우 집으로 다니며 하인 노릇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덕행이 뛰어나 사람들의 눈을 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기도에 전념하였으며, 천주를 사랑하는 뜻으로 천한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늘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만 순교할 기회를 놓친 것뿐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느님 섭리로 그 기회를 다시 얻게 되도록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1846년 병오박해 때에 수산나는 여교우들과 함께 석정동의 김대건 신부 댁에서 생활하고 있다가 김 신부가 체포된 후 이 아가타(Agatha)의 집에 있다가 그녀와 함께 잡힙니다.
포청에서 수산나는 치도곤, 태형, 주리 등의 혹형을 당하였지만 배교한다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고 결국 죽을 때까지 매질하라는 명령에 따라 수 없는 매를 맞고 4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이때가 1846년 9월 20일 이이었으며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수산나(Susanna) 축일 1.(1-5) _ 1월 18일, 5월 24일, 8월 11일, 9월 19일,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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