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바오로(Paul) 축일 5.(24-34) - 7월 3일, 7월 20일, 7월 25일, 8월 17일, 8월 29일, 9월 25일, 10월 3일, 11월 6일, 12월 15일, 12월 19일, 12월 24일

 

바오로(Paul)

같은이름 : 바울로, 바울루스, 폴, 파울로, 파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24. 7월 3일 성인 바오로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연대미상

 

로마 순교록의 목록에 따르면 성 마르코(Marcus)와 성 무키아누스(Mucianus)는 칼을 맞고 살해되었으며 그들을 향해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바치지 말라며 큰 소리로 외치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소년은 채찍형을 받았고, 더욱 큰 소리로 그리스도를 고백하자 그들과 마찬가지로 살해되었습니다. 이때 그들의 순교를 격려하던 성 바오로 역시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그들의 순교 연대나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5. 7월 20일 성인 바오로

신분 : 부제, 순교자

활동지역 : 코르도바(Cordoba)

활동연도 : +851년

 

에스파냐 남부 코르도바에 있는 성 조일루스(Zoilus)의 수도원에 속해 있었던 성 바오로 부제는 무어인들에 의해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열성적으로 봉사하였습니다. 그이 동료들은 그가 참수되었을 때 그의 유해를 정성껏 수습하여 성 조일루스 성당에 안치하였습니다.

 

26. 7월 25일 성인 바오로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가자(Gaza)

활동연도 : +308년

 

성 바오로는 가자에서 4세기 초 교회에 대한 박해 중에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

 

27. 8월 17일 성인 바오로

 

28. 8월 29일 성인 바오로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연대미상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성 바오로와 성 니케아(Nicaeas)가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중에 순교하였습니다.

 

29. 9월 25일 성인 바오로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다마스쿠스(Damascus)

활동연도 +4세기경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성 파울로와 그의 아내인 성녀 타타(Tatta),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성 루포(Rufus), 성 막시모(Maximus), 성 사비니아노(Sabinianus), 성 에우제니오(Eugenius)가 체포되어 채찍질과 구타와 다양한 고문을 당하고 자신들의 영혼을 기꺼이 하느님께 바쳤다고 9월 25일 목록에서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순교 시기를 4세기경으로 보았습니다.

 

30. 10월 3일 성인 바오로

31. 11월 6일 성인 바오로

11월6일이-축일인-성-바오로
성 바오로(11월 6일)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 +351년경

 

그리스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 출신인 성 바오로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사제품을 받고 콘스탄티노플의 첫 번째 대주교가 된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8월 28일)의 비서로 일하다가 성 알렉산데르 주교가 337년 선종한 후 그의 후임자로 선출되어 주교로 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337~361년 재위)가 그 자리에 없었는데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들만의 회의를 소집하여 성 바오로 주교를 단죄하고 추방해 버렸습니다. 성 바오로는 이때 서방으로 가서 피난처를 구하고 복귀할 기회를 찾았지만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로마에서 교황 율리오 1세(Julius I, 4월 12일)를 만난 그는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 341년에 주교좌로 돌아왔지만 아리우스파가 다시 그들의 주교를 뽑고 대립하였고 황제는 기병대장 헤르모게네스를 보내 성 바오로를 추방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교를 보호하려는 이들은 헤르모게네스의 집을 불태우고 살해하였고 폭동이 연이어 일어나게 됩니다. 그는 이 사건으로 다시 유배되었지만 344년, 교황의 지지를 받고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성 바오로는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교리를 지키기 위해 유배와 귀환을 반복했으며 결국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명으로 다시 유배길에 오르게 됩니다. 여러 곳을 거쳐 마침내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작은 마을인 쿠쿠수스(Cucusus, 오늘날 튀르키예 중남부의 곡순[Goksun])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그곳의 지하 감옥에서 굶어 죽도록 방치되었는데, 병사들은 6일 뒤에도 성 바오로가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잔인하게 목 졸려 죽이고 말았습니다. 350년 선종한 그의 시신은 테오도시우스 황제(379~395년 재위) 때인 381년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의 성 로렌조(San Lorenzo) 성당으로 1226년에 옮겨 모셔졌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바오로 주교가 가톨릭 신앙을 지키고자 추방과 복귀를 반복하였고 아리우스파의 계략으로 목이 졸려 사망하였다고 6월 7일 목록에서 기록하였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바오로 주교가 니케아 신조를 지키다가 아리우스파에 의해 반복적으로 추방되었으며 결국은 콘스탄티우스 황제에 의해 카파도키아의 곡순으로 추방되어 잔인하게 처형되었다고 11월 6일로 옮겨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성 바오로 1세(Paulus I) 또는 성 바오로 증거자(Paulus the Confessor)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32. 12월 15일 성인 바오로

신분 : 은수자

활동지역 : 라트로스(Latros)

활동연도 : +956년

 

사라센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황제군의 장교의 아들이었던 성 바오로는 그 후 어머니와 함께 고향인 페르가몬(Pergamon)을 떠나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로 가게 되는데 여기에서 어머니마저 잃게 됩니다. 그는 이때 동생과 함께 성 바실리우스(Basilius)가 이끄는 몬테라트로스의 은둔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라트로스 산 정상의 어느 동굴을 움막으로 삼은 그는 도토리 외에는 다른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농부들이 음식물을 주었지만, 야생풀로만 연명하였고 그의 성덕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이들을 피하기 위해 그는 일종의 유랑생활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산을 타면서 성무일도를 노래로 부르며 다녔던 그는 영적인 기쁨을 못 이겨 춤을 추기도 하였습니다. 이윽고 그는 사모스 섬의 어느 동굴 속에 숨었지만 그가 발견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3. 12월 19일 성인 바오로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연대미상

 

소아시아 지방 니케아(Nicaea)에서 성 바오로와 성 다리우스(Darius), 성 조시무스(Zosimus), 성 세쿤두스(Secundus) 순교하였습니다.

 

34. 12월 24일 성인 바오로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연대미상

 

성 바오로와 성 드루수스(Drusus), 성 루키아누스(Lucianus), 성 메트로비우스(Metrobius), 성 제노비우스(Zenobius), 성 테오티무스(Theotimus)는 리비아(Libya)의 트리폴리(Tripoli)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