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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체험 이야기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의 신앙체험 (강론 내용)

 

†찬미예수님

 

저는 70년대 초반에 신학교를 다녔어요.

그때 신학교에는 개미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개미회에서는 교도소의 사상범(간첩)들과 1:1로 자매결연을 했어요.

나랑 파트너가 된 그 할아버지는 휴전 후 바로 잡혀서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사상을 바꾸지 않은, 겉도 속도 빨간 토마토 공산주의자였어요.

사상을 바꾸지 않은 사상범은 죽을 때까지 독방에 있었어요.

그 할아버지는 30여 년을 독방에 있어서 말을 하지 않아 입이 오무라 들었어요.

개미회에서 쓰레기 분리수거 모은 돈으로 과일을 사 가지고 찾아가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어요.

나 혼자 떠들다 오는데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의 눈빛이 너무 무서웠어요.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간 것이 1년이 지났는데 하루는 갔더니 저보고 귀를 갖다 대래요.

그 할아버지에게 귀를 갖다 대었다가 목사가 귀를 물어뜯기고 스님이 고막이 터졌다는 소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겁이 났는데 그 할아버지가 내 귀를 잡아당기더니 

"이 간나 새끼, 너 사살 바꾸려고 작업하고 있지? 하느님이고 나발이고` 나가라우 썅~"

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 나왔어요. 얼마나 무서운지~

 

교도소장에게 '저는 내일부터 안 나오겠다...무서워서..' 라고 말했어요.

그 교도소장은 착실한 천주교 신자였어요.

"개신교, 불교에서 포기했는데 우리 천주교마저 포기하면 어쩐대요?

그래도 신학생님, 와주셔야지요."

간곡한 부탁에 "알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 길로 신학교에 가서 신학교 성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약속을 했지요.

"1년 동안 두 가지 희생을 하겠습니다. 아침을 안 먹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묵주기도 30단을 할 테니 우리 할아버지 마음 좀 바꾸게 해 주세요."

 

신학생이 아침을 안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 당시에는 외출도 안되고, 저녁 6시에 밥 먹고 그다음 날 아침까지 먹을 것이 없어서 정말 배가 고파요.

학생들이 잠자는 이유가 아침에 밥 먹기 위해서야.

아침 미사 끝나고 나면 식당에서 밥 냄새가 솔솔 나 

난 갈 수가 없어. 아침을 포기했으니까.

 

일 년 동안 기를 쓰고 아침을 굶었어요.

저녁시간에 친구들이 다 잠이 든 이후에 혼자 묵주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걸터앉아 묵주기도 30단을 바쳤어요.

어떤 때는 깨어보면 변기에 앉아서 잠들어 있어.

 

하루도 안 빠지고 그 할아버지의 회심을 위해 기도했어.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가보면 할아버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아, 찔러도 피가 안 나오는 인간인데. 내가 밥 굶고 묵주기도드린다고 될 것 같지 않은데..'

그때마다 내 귓전을 때리는 소리가 있었어요.

"성모님께 청하면 거절하시는 법이 없다!"

그걸 내가 믿었어요.

"성모님, 저 일 년 동안 힘들었습니다. 오늘 할아버지 만나러 갑니다. 도와주세요."

수박 한 통을 쪼개어 놓고 그 할아버지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데 철문이 열리면서 면접실로 들어오시던 할아버지가 날 보고 빙긋 웃는 거야.

할아버지 만나고 웃으시는 것, 그때 처음 봤어요.

그리고 내 앞에 앉더니 또 귀를 갖다 대래요.

여차하면 도망가려고 살짝 다가갔더니 

그 할아버지 2년 만에 두 번째 하는 소리가 내 귓볼을 만지면서 

"학생, 내가 졌어."

 

자기는 이곳에 있으면서 간첩이라는 것 때문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고 살았대요.

개신교에서도 오긴 했는데 '종간나 새끼~' 한 번만 하면 그다음부턴 안 와.

그런데 학생은 달라, 그 오만소리 다 듣고 매달 찾아오는 것 보면서 

'저 학생이 저렇게 아름다운데 저 학생이 믿는 하느님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짐작이 가. 내가 졌어.'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나 같은 사람도 하느님을 믿을 수 있나?'

저는 엉엉 울었어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어가서 그분께 교리를 가르쳤어요. 

석 달 뒤에 그분은 공산당을 포기하고 세례를 받았어.

 

 

독방에서 공동방으로 들어가시더니 3개월 후에는 완장까지 차고 있어.

반장이 된 거야 

원래 무기징역인데 열심히 사셔서 2년 후에 8.15 특사로 나왔어요.

신한교에서 그분 보증을 서서 광복절 특사가 된 거야.

 

그분이 교도소에서 딴 자격증만 20개가 넘어요.

그분을 신학교 학장님께 말끔 드려서 신학교 수위 아저씨 겸 목수로 취직을 시키고 신학교 안에 집을 지어서 그분을 모셨지요.

그분은 이북에 처자식이 있었지만 그때 우리 신학교 식간에서 밥해주던 과부 할머니와 달 밝은 밤에 만나게 해 주었더니 전깃불이 막 튀는 거야.

학장님 주례로 혼배성사를 치렀지요.

 

그분은 90이 넘을 때까지 목수 겸 수위로 계셨어요.

제가 신학교에 갈 일이 있어서 들르면 수위실에서 뛰쳐나와 나를 꽉 껴안으시며 

"저는 신부님을 보면 하느님을 보는 것 같아요. 신부님 귀에 대고 '종간나 새끼~' 했을 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셨다면 제 머리통 부딪혀서 자살하고 말았을 겁니다.

지금은 성모님 닮은 아내도 생겼고, 거룩한 신학교 안에서 한평생을 사니 신학생들이 사랑해주고,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신학생 때, 저 사람이 아무리 깊은 어둠에 빠져있어도 인내심, 담대함, 조건 없는 사랑 이 세 가지가 있으면 어떤 강한 마귀도 떼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우리 예비자 여러분들도 세례 받고 나면 영이 맑아지기 때문에 예민해질 거예요.

오히려 신자가 아닐 때는 마귀들이 건드리지도 않아요.

세례 받고 나면 계명을 지키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스러워질 때가 있어요.

영이 맑아지기 때문에 작은 어둠도 강하게 느껴져요.

그럴 때마다 어지간한 것은 나 스스로 구마기도 할 수 있어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나를 괴롭히는 사탄아, 물러가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라~"

 

여러분이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어둠을 강하게 몰아낸다면 나의 영혼은 온전히 지켜질 거예요.

또 우리 주변에는 여러분을 도와주는 사제들이 있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세요.

 

여러분이 선택한 것,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버리지 마세요.

여러분, 가장 좋은 것 선택하셨어요.

그러나 천주교 신자로 선택받은 거지 내가 택한 것이 아니에요. 잊지 마세요.

 

천주교를 내가 선택했다고 하는 사람의 논리는 뭐냐? 

내가 선택한 교회, 들어와 보니 내 맘에 안 들어, 나가자!

이게 냉담자, 배교자들의 논리예요.

 

그러나 나 같은 죄인 하느님께서 불러주셔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고 하면, 

그렇게 쉽게 냉담하지 못해요.

 

그리고 어차피 이 세상 교회는 불완전한 곳이에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어요. 

성당에도 눈살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인간들만 보지 마시고 그런 사람 때문에 신앙 잃지 마세요.

사람보고 신앙생활하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 가슴속에 예수님만 담으세요.

 

사람을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상처로부터 헤어나지 못해요.

미운 놈 피해 도망 가보세요. 더 미운 놈 기다려요.

저 놈 보기 싫어 저녁 미사 가야지. 하고 저녁미사 가보세요. 그놈도 똑같은 생각으로 저녁미사 나와요.

언제까지 내가 인간을 피해 다니겠는가!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어떤 놈이 나를 잡아 흔들어도. 내 가슴에 칼을 꽂아도.

물론 칼이 꽂힐 때 피가 나고 아프지요.

그러나 예전이랑 뭐가 다르냐

회복이 빨라요 

 

인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늘 상처로부터 헤어나지 못해요.

그러나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면 담대하기 때문에 

느티나무처럼 흔들림이 없을 거예요.

신앙은 바로 그거예요.

 

내 안에 있는 사람을 몰아내고 그 안에 예수님을 얼마나 차게 하느냐

그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아멘

 

(청주교구 서운동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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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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