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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예레미야(Jeremiah) 축일 1.(1) - 5월 1일

 

예레미야(Jeremiah)

1. 5월 1일 성인 성인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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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예레미야(5월 1일)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연도 : 650-588년경BC

같은이름 : 예레미아, 예레미아스, 제레미

 

예레미야서는 구약성경의 예언서 중 가장 긴 내용을 지녔으며 성 예레미야는 예레미야서의 명목상 저자입니다. 구약성경 안에 만일 예레미야 예언자가 없었다면 유다이즘과 그리스도교는 그 종교적 본질을 매우 달리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음과 인격의 종교를 예레미야가 주창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이사야(Isaias, 5월 9일)보다 한 세기 뒤인 기원전 650년경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아나톳에서 성 예레미야는 에브야타르 사제 가문 출신인 힐키야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다윗 왕실의 대사제였던 에브야타르는 솔로몬과 왕위를 두고 경쟁하던 아도니야 편에 섰다가 축출되어 아나톳으로 쫓겨났었기에 예레미야는 왕실에 속하지 않은 비주류 사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다른 어느 예언자보다 자세하게 예레미야 예언자의 생애와 성격에 대해 전해주고 있는데 성경 안에 그를 3인칭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3살 무렵인 기원전 627/6년에 예레미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젊은 예언자로 나섰습니다. “유다 임금 아몬의 아들 요시야 시대, 그의 통치 십삼년에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예레 1,2) 성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멸망이 예견되었고, 예루살렘의 몰락을 초래한 비극적 시대를 살고 있었는데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과 주권 회복은 많은 유다인에게 큰 희망을 주었지만, 요시야 왕이 기원전 609년에 아시리아 임금을 돕기 위해 출정한 이집트 임금 파라오 느코를 맞서 싸우러 나갔다가 불행하게도 므기또에서 전사하면서 물거품으로 돌아갔습니다(2열왕 23,29). 다시금 고대 근동 지방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고 기원전 612년에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가 함락됨으로써 바빌론 제국이 세력을 넓혀나갔으며 유다를 비롯한 팔레스티나 주변의 약소국가들을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와 네부카드네자르가 전쟁을 벌이자 이집트는 바빌론의 지배에 항거하도록 유다 왕국을 사주하였고, 유다 임금 여호야킴은 유다의 독립을 되찾고자 하였지만 오히려 바빌론의 침략을 받게 되어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성전을 완전히 파괴한 후 바빌론 유배지로 지도자급 저항 세력과 상당수의 백성을 끌고 갔고 유다 땅에는 결국 소수의 비천한 계층 사람들만 남게 되었습니다(2열왕 25,12; 예레 52,16).

 

 

이 어두운 시대에 예언자 예레미야는 유다 민족의 역사적 비극을 모두 지켜보았지만 그가 이러한 모든 비극을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와 백성에게 예언자로서 하느님 말씀의 대변자로 나서 맹렬히 설교하였고 때로는 유다 왕국의 몰락을 위협하면서까지 예고하였습니다. 다윗의 왕좌를 차지한 유다의 왕들은 이 불같은 예고를 아예 무시하였으며 군인들은 그가 패배주의를 선동한다고 비난하면서 예레미야를 박해하고 고문하며 투옥하기까지 하였고 결국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 강기슭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았지만(시편 137) 끝내 망명하는 것을 거부하고 고국 땅 팔레스티나에 머무르기로 하였으며 그의 보호자는 바빌론에 의해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그달야였습니다(예레 40,1-6). 그러나 미츠파에서 이스마엘과 그의 부하들이 그달야 총독을 암살하였고(41,2) 그 후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군대의 모든 지휘관과 백성들은 하느님의 뜻을 물었고 그는 이집트로 도망가지 말고 고향을 지키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빌론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예레미야 예언자를 인질로 삼아 이집트로 들어갔습니다(43,6-7). 혹독한 시대를 견뎌내며 예언자로 40년 이상 예언자로 활동한 예레미야는 강제로 이집트로 끌려갔으며 전승에 따르면 돌에 맞아 그곳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전 생애를 통해서 예언자가 겪는 고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레미야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혹독한 심판까지 선포해야 했기에 ‘말씀의 고독한 예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성품이 온순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에게 주님께서는 민족들과 왕국들을 맡기며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예언자의 소명(예레 1,10)을 주셨습니다. 그가 전한 주님의 말씀은 그에게 날마다 비웃음거리와 치욕을 안겨주었고(20,8) 예레미야는 평화를 원했지만 자신의 가족과 왕들, 사제들, 거짓 예언자들과 모든 백성을 거슬러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예레미야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15,10)라고 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하였으며 그러면서도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20,9)라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느님과의 내적인 대화는 온통 고통의 외침이었는데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15,18) 하고 외친 그의 고백은 “저주를 받아라, 내가 태어난 날! 복을 받지 마라,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20,14)에서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은 예레미야의 영혼을 정화해 주었고 하느님과의 내밀한 친교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우리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새 계약(예레 31,31-34)을 성문화해 예언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내적인 종교를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인격적 종교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종교 가르침을 심화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11,20) 분이시며 각자의 행실대로 갚아주시는 분이시다(17,10; 31,29-30 참조). 하느님과의 우정은 인간의 교활하고 악한 마음의 소산인 죄에 의해 끊어진다. 악한 마음이 모든 죄의 뿌리란 것을 예레미야만큼이나 강조한 사람도 없다(4,4; 17,9; 18,12). 이 점에 관한 한 예레미야는 호세아(Hosea, 10월 17일) 예언자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한데 그에 의해 율법이 내면화되었고 그가 하느님과의 모든 관계는 마음의 소산임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의 개인적 인격에 예레미야가 큰 관심을 둔 것으로 보아 신명기(申命記)계의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백성의 윤리적, 종교적 삶을 변혁하려면 내적 인간의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예레미야는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살아생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지만 그가 죽은 뒤에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만 갔습니다. 마음의 종교에 기초를 둔 ‘새 계약’의 사상은 예레미야를 유다이즘의 아버지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의 영향을 에제키엘서와 제2 이사야서(40-55장)와 시편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예레미야 예언자를 마카베오 시대 사람들은 민족의 수호자 중 한 사람으로 꼽았습니다(2마카 2,1-8; 15,12-16). 그는 영성적 가치를 힘과 물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영혼이 하느님과 맺는 내밀한 관계를 밝혔습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교의 새 계약을 준비한 인물로 통합니다. 그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열정과 말씀 때문에 겪은 고통을 통해 이사야서 53장의 ‘고통받는 주님의 종’을 몸소 예고하며 그리스도의 형상(形象)을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그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의 멸망과 백성의 유배를 선포하여 많은 박해를 받음으로써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5월 1일 목록에서 보여주었고,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1,33)라는 새 계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것을 예언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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