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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세례명 이야기

마리아(Mary) 축일 1.(1) - 4월 1일

 

마리아(Mary)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제외한 다른 마리아의 축일입니다.

 

4월 1일 성녀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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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4월 1일)

 

신분 : 은수자, 통회자

활동지역 : 이집트(Egypt)

활동연도 : +421/530년경?

같은이름 : 메리, 미르얌, 미리암

 

팔레스티나에서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통치하던 5세기 중엽에 태어난 성 조시무스(Zosimus)는 매우 젊은 나이에 팔레스티나에 있는 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고, 은수자로 오랜 세월 생활하면서 영적 지도자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성 조시무스는 그렇게 수십 년 동안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다가 53세의 나이에 사제가 되었고 요르단 강과 가까운 광야에 있는 엄격한 수도원으로 가서 지내게 되었는데 매년 사순시기가 되면 요르단 광야로 가서 수도회의 관습대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에도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광야에서 사순 시기를 지내고자 한적한 광야에서 시편을 읽으며 기도하며 가던 중 충격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Maria)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오랜 광야 생활로 인해 옷은 다 낡아 벗은 것과 다르지 않았고 연로하여 백발이 다 된 긴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어 사람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성녀 마리아는 자신의 몸을 덮을 망토를 던져달라고 성 조시무스에게 청하였고 그러고 나서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에 관해 이야기해 주면서 성목요일에 성체를 모시기를 청하였고 성 조시무스는 성체를 모셔와 그녀가 영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녀의 진실한 마음과 보속의 삶을 이해한 성 조시무스는 이 통회의 여인에게 다음 해 성목요일에도 성체를 모셔 오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성 조시무스가 그 이듬해에 왔을 때 성녀 마리아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성녀 마리아의 시신을 정중하게 묻어주고 자신의 수도원으로 돌아온 성 조시무스는 다른 수도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였습니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의 시신 옆 모래 위에는 성체를 모시고 세상을 떠나는 자신을 묻어달라는 청이 쓰여 있었다고 하며 성 조시무스는 지나가던 사자의 도움을 받아 땅을 파 성녀 마리아를 묻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는 수도원 안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처음으로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성 소프로니우스(Sophronius, 3월 11일)가 글로 기록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성 소프로니우스가 기록한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의 생애”에 따르면, 344년경 상(上)이집트(Upper Egypt)의 어느 곳에서 태어난 성녀 마리아는 부모에게 12살까지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으며 신심 깊은 소녀로 자랐으나 세상의 쾌락에 눈뜨면서 부모의 집을 도망 나와 하(下)이집트(Lower Egypt)의 대도시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가게 됩니다. 17년간 그곳에서 창녀로 살면서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탐하던 중 그녀는 순례자들이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경축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순례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향에 대한 호기심과 많은 순례자 사이에서 몸을 팔아 좀 더 쉽게 돈을 벌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예루살렘에 도착한 뒤에도 순례자들을 습관적으로 유혹하였고 그렇게 번 돈으로 생활했습니다.

 

어느 날 ‘참된 십자가’를 현양하는 사람들을 따라 그녀는 주님 무덤 성당에 들어가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신비스러운 힘에 막혀서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는데 이에 성녀 마리아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자신의 불결한 생활로 인해 하느님께서 거부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오랜 세월 동안 느끼지 못했던 통회의 마음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성당 밖에 걸려 있던 성모 마리아 이콘을 보면서 간절히 용서를 청하였고 세상을 떠나 이제부터 사막으로 들어가 참회하며 고행자로 살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비로소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거룩한 십자가 유물에 공경을 표한 그녀는 자신이 기도했던 이콘 앞으로 와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는데 그때 그녀는 “요르단 강을 가로질러 요한 세례자가 살았던 광야, 예수가 세례받은 곳으로 가서 영광스러운 안식을 찾아라.” 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녀는 그 길로 빵 세 덩이만을 들고 즉시 광야로 들어가 47년을 성 요한 세례자처럼, 광야의 열매와 거친 음식을 먹으며 속죄의 삶을 살았고 그러던 중 성 조시무스를 만나 성체를 영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성녀 마리아는 코르토나(Cortona)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 2월 22일)와 함께 대표적인 통회자로 알려졌으나 그녀의 생에는 자료에 따라 의견도 분분하고 그녀의 존재를 일부 학자들은 의심하기도 합니다. 볼란드 성인전 편찬회(Bollandists)는 성인전(Acta Sanctorum) 편찬에 종사하는 예수회원들로 그녀의 죽음을 421년 또는 530년경으로 보고 있으며 옛 “로마 순교록”은 통회자인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의 죽음을 기념한다고 4월 2일 목록에서 적었습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팔레스티나에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명한 통회자인 성녀 마리아가 예루살렘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로 회개한 후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가서 고독 속에서 참회 생활한 것을 기념한다고 동방 정교회와 같은 날인 4월 1일로 옮겨 기록하였습니다. 조시마(Zosima) 또는 조시마스(Zosimas)로도 불리는 성 조시무스는 전통적으로 4월 4일에 축일을 기념해 왔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도 4월 4일 목록에서 팔레스티나에서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의 유해를 묻어주었던 은수자 성 조시무스를 기념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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